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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묘년 새해, 너에게 묻는다.

밀교신문   
입력 : 20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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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돌아보니 그 어느 해보다 바빴다. 돌이켜보면 실속 없이 바쁘기만 했지 나는 여전히 공허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쳇바퀴처럼 심인당에서 심인당으로 심인당에서 서울 아사리교육까지 그 와중에 코로나까지 겹쳐 무엇 하나 제대로 야무지게 해내지 못했다. 그 공허감의 정체는 공부를 핑계로 보살님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었다. 그 누구는 공부를 자기 삶을 연구하는 과정, 자성을 찾는 과정이라 말한 바 있다. 나는 매일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다른 사람이기를 원했다. 어쩌면 분별심은 깨달음으로 가는 최대의 걸림돌이라는 것을 알기엔 내 수행이 너무 부족했다.


지도무난(至道無難)이요 유혐간택(唯嫌揀擇)이니, 단막증애(但莫憎愛)면 통연명백(同然明白)이라. 참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미워하고 사랑하는 차별심이 없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 3조 승찬스님의 <신심명>에 나오는 말씀이다. 나는 한때 사람은 애증으로 산다고 믿었다. 너와 나의 일상이 매일 부대끼며 미워했다가 화해하고, 이기적이었다가 배려하고 현실적 사랑의 환상을 갖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이상적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공부가 더 무르익었다면 참된 진리란 사랑하고 미워(좋고, 나쁨)하지 않는 데 있다는, 분별하지 않는 마음에 있다는 그 심오한 이치를 깨달았을 것이다.

 

올 해는 검은 토끼해다. 헌신과 희생의 상징으로서의 토끼는 불교 설화에 잘 나타나 있다. “어느 날 여우와 원숭이, 토끼가 불심을 자랑하기 위해 제석천을 찾아갔다. 제석천은 이들을 시험하기 위해 시장기가 돈다고 말했다. 여우는 잉어를 물어오고 원숭이는 도토리를 가지고 왔으되, 토끼만 빈손으로 왔다. 토끼는 제석천 앞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불 속에 뛰어들며 내 몸이 익거든 드시라고 말했다. 제석천은 토끼의 진심을 가상히 여겨 중생들이 그 유해나마 기리도록 토끼를 달에다 옮겨 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토끼는 만물의 성장과 번창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종조께서는 나날이 새로운 데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 마음이 항상 새로우면 어떠한 것이라도 항상 새로운 것을 맛볼 수 있다. 나날이 새로운 마음을 가져 평범함 속에 한없는 생활미를 발견함이 참으로 행복한 생활이다.”라고 하셨다. 새해 달력이 힘차게 손을 잡는다. 어제와 다름없이. 몇몇 사람은 심인당에서 분주히 새해를 맞을 것이다. 하늘을 향해 쏘아올리는 화살기도 같은. 내게도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새해 소망이 있다. ‘언제나 제가 제 삶의 주인공이게 하시고, 나와 이웃(보살님)들을 자비로 보살피게 하소서.’

 

새해 첫날 연탄재를 생각한다. 시인 안도현은 <너에게 묻는다>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고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되묻는다. 연탄재는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사는 이타적 존재로서 타자,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타인을 보살피기 위해 자기 온몸을 태우는 자비의 방식으로 읽힌다. “온몸으로 사랑하고/한 덩이 재로 쓸쓸히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중략>‘연탄 한 장’.

 

계묘년, 올 한 해 나에게 묻는다. 한 덩이 재로 남는 게 두려워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는 삶이 아니기를, 그리하여 이렇게 질문을 바꿔보자.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이 아니라, 만일 내가 어제 죽었다고 상상해 보면 답은 뚜렷하다. 우리는 어제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