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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과 더 좋은 사람

밀교신문   
입력 : 2023-06-29  | 수정 : 2023-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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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 그녀가 말했다. “세상에 보통 사람은 많아도 더 좋은 사람은 없다.”라고. 찰나 뒤통수를 내리치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우리 심인당에서 가장 동심에 가까운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 느니 실로 그러했다. 보통 사람과 더 좋은 사람의 기준이 모호하고 다소 주관적이기에 섣불리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내 짧은 소견에도 보통 사람과 더 좋은 사람은 확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보통 사람은 자신을 먼저 챙기는 사람이고, 더 좋은 사람은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바꿔 말하면 날마다 성장하는 사람과 보통 사람은 조금 다를 것이다.

 

얼마 전 열반에 드신 노보살님은 소박한 꿈이 있었다. 부산서 교화할 당시 인연을 맺었던 보살님이다. 독거노인을 초청해 심인당 마당에서 점심 공양을 대접해 드리는 것이 평소 꿈이셨다. 몇 달 전 보살님의 전화 목소리가 여전히 귓전을 맴돌고 있다. 그 통화가 마지막이 될 줄을 친정어머니를 마지막 떠나보내는 심정이 이랬을까. 실제로 보살님은 12년 전 열반하신 친정어머니와 동갑이다. 어머니를 대하듯 간간이 전화로 메마른 안부만 전했었다. 평소 더 많이 보살펴 드리지 못한 회한이 눈처럼 쌓였다. 나는 기필코 보통 사람일지언정 더 좋은 사람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보살님과 오래전부터 약속해 둔 것이 있었다. 열반하시면 꼭 49일 불공은 정성스레 해드리겠다고 덜컹 약속하고 말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사위분께서 시신 기증 카드를 보여주셨다. 장기기증을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시신 기증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당신 자신보다는 남에게 베푸는 것을 더 많이 좋아하셨으니,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와 보시를 몸소 실천하셨다.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있었다. 마장과 공덕, 번뇌와 보리, 흑암천과 공덕천의 다양한 모습들이 상호 공존하며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윤회하는 것을 보살님을 마지막으로 보내면서 다시 떠올려 본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날마다 성장하는 사람, 어찌 보면 성장하는 사람이란 달리 말하면 늘 깨어 있는 사람, 또는 참회하고 성찰하는 사람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렇게 부처님 품에서 밥을 먹으며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도 천복이라면 크나큰 천복, 로또 당첨에 가까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밥값은 제대로 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최근 읽었던 자동차에서 내려 걷는/ 저녁 시골길/ 그동안 너무 빨리 오느라/ 극락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디서 읽었던가/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영혼이 뒤따라오지 못할까봐/ 잠시 쉰다는 이야기를....” 공광규 시인의 <되돌아보는 저녁>을 생각한다.

 

나의 저녁은 혹은 이웃들의 저녁은 어떠한가. 바쁘다는 핑계로 현대인이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자신을 되돌아보며 걷는 저녁 길이다. 우리 모두 너무 바삐 사느라 어쩌면 극락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성실하고 평범한 일상들이 모여 이생의 극락을 이루는 것, 내생의 극락까지 갈 것 없이 금생의 극락이 곧 내생의 극락이기에 지금 이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아가는 행위 그 자체가 극락일 것이다. 눈앞에 그것도 가장 가까이서 펼쳐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여유를 떠올리기만 해도 극락이 그곳에 있다. 보통 사람과 더 좋은 사람의 차이는 미래세대를 위해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정진하는 것, 또는 인디언들처럼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가 혹 영혼이 뒤따라오지 못할까봐 매 순간 영적 삶을 보살피는 것 등을 게을리하지 않는 삶일 것이다. 모든 사라지는 아름다운 것들은 온전히 여백으로 남으리라. 오늘도 내일도.... 부디 왕생극락하소서.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