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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마음, 딸 마음

밀교신문   
입력 :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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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참 조심스러운 요즘입니다. 생명이 주어진 순간부터 입을 트는 게 걸음마처럼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었는데 뱉어낸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는 말의 무게를 체감하는 요즘입니다. 말을 많이 하게 되는 자리가 부담스럽고, 아무리 좋은 소식이라도 남의 얘기가 나를 통해 전달되지 않기 위해 늘 경계합니다. 대화 소재가 줄어드는 대신 뱉고 나서 후회하는 날도 덩달아 줄어듭니다. 말수는 적어지더라도 마음은 평온합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일 때 방문한 문경 명상 마음 캠프에서 묵언수행을 하시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답답하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에 해답을 주시듯 표정에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돌이켜보면 세 치 혀에서 나온 말로 의도치 않은 상처를 주고 후회를 쌓는 과정을 반복하며 우리는 겪지 않아도 될 괴로움을 너무 많이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닮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그래서 유독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의 목소리에는 향기가 났고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조바심이나 조급함이 없습니다. 빨리 전달하는 것보다 한번을 제대로 고심해서 전달하려니 늦더라도 돌아가는 일이 없습니다. 예쁜 말은 차분함을 동반했고 차분함은 곧 내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과 이어져 있었습니다. 뾰족한 말은 뾰족한 마음에서 나오고 다소곳한 말은 다소곳한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들리는 말로 표현될 뿐이었습니다.

 

말은 번개처럼 빠르게 상대에게 내리꽂고 감정은 물감은 먹는 한지처럼 서서히 나를 적셔옵니다. 늘 감정보다 말이 앞서가는 게 문제였습니다.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는 말을 이미지로 그려본다면 커다란 항아리에 물이 서서히 담기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넘치기 직전까지 차오른 물이 흘러내리는 그 순간처럼 감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마음이라는 항아리에 감정이 찰랑찰랑 찰 때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만, 우리의 말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너무 쉽게, 그리고 빠르게 나에게서 남에게 전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늘 상대로부터 들리는 말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게 됩니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뒤따라온 감정은 나 몰라라 내팽개쳐지기 일쑤입니다. 말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하는 마음은 얼마나 애가 탈까요?

 

왜 이렇게 늦었니?”라는 엄마의 말 속에는 늦어서 걱정했단다라는 마음이 담겨있고,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라는 말에는 너를 도와주고 싶어라는 마음의 소리가 묻어 있었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읽지 못한 딸은 그저 엄마는 도대체 왜 내 마음을 몰라!”라고 소리칠 뿐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은 모르더라도 본인의 감정이라도 알아차려야 말과 마음이 일치할 텐데, 오늘도 역시나 마음과 말은 따로 놀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엄마이기에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어라는 미안한 딸의 마음을 제대로 읽습니다. 엄마의 마음 항아리는 어느새 우주를 담을 만큼 넓고 커져 있었습니다.

 

양유진/글로벌 서비스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