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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빛은 빛나지 않는다

밀교신문   
입력 : 2023-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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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6년 만에 돌아왔다. 그것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78일 일정으로 완연한 가을속 경주로. <이야기 치료> 창시자인 마이클 화이트는 우리의 삶을 이루는 것은 바로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삶의 서사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오래전 일이다. 그것도 3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체력장 시험 동기인 특별한 인연이다. 내가 힘겹게 재수하던 시절 나의 고등학교 모교에서 만나 체력장을 같이 치뤘다. 그 인연의 세월이 강산이 3번 바뀌고도 남았다. 그녀는 그 잘나가던 철밥통이라는 공직생활 20년을 채우고, 그녀의 바람대로 멋지게 사표를 던지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녀가 오래전부터 꿈꿨던 삶을 더 늦기 전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한 나로 살고 싶었을 것이다. 시민단체서 그리고 대안학교, 동네서점 등 성실히 살되 집착하지 않으며, 항상 배우고 익히며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갔다. 뒤늦게 한국어문화학과에 편입해 공부한 것은 해외봉사를 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최근에 최종 목표인 코이카 해외봉사도 신청해 놓은 상태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노마드(자유로운 정신)를 언급했다. 노마디즘(nomadism)이란 버려진 불모지를 새로운 생성의 땅으로 바꾸는 것,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꿔 가는 창조적 행위를 지향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노마드를 떠올리며 부처님을 그리고 종조님을 생각해 본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위해서 한번 도 쉬지 않고 새로운 길을 따라 길 위에서 맨발로 유행하셨다.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생사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 해탈이 함께하는 그리하여 버려진 불모지(고통의 세계)를 새로운 정토로 바꾸기를 꿈꾸셨다. 어찌 보면 부처님만큼 철저하게 노마드를 실천하신 분도 없을 것이다. 이렇듯 노마드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 자신을 바꾸어 나가며 창조적 삶을 살도록 이끄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 기인하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삶과 타인의 행불행의 삶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그래서 유기적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이었을 것이다. 운디드힐러(Woundedhealer)란 말이 있다. “모든 치유자는 상처 입은 사람이다.”라고 칼 융은 말한 바 있다. 상처 입은 치유자, 즉 내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돕고 치유하는 사람을 말한다. 상처로 고통받은 사람이야말로 누군가에게 진정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인간은 언제나 아픔을 딛고 온전한 나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 지니고 있다. 삶에서 겪었던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고 실한 대추 하나 꺼내 심을 줄 아는 그런 마음, 어쩌면 건강한 삶이란 건강한 마음의 밭을 가꾸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녀의 56년 가을의 삶이 또 이렇게 지나간다. 수많은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죽어가지만 서로 다른 삶의 서사가 존재하듯, 서로 같은 별에 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 이토록 무한한 삶의 경이로움 앞에 인간은 때때로 한없이 작아지면서 성장하기도 한다. 진광불휘(眞光不輝), 진짜 빛은 빛나지 않는 법. 우리 모두의 삶이 값지고 쓸모 있기를 이 가을에 다시 생각한다. 가을이 무르익어 갈 쯤에 겨울이 먼저와 있을 것이다. 매번 가을을 맞이하지만 아니 온 듯이 지나가곤 한다. 우리 삶의 여정이 언제나처럼 시간을 넘어 화이부동(和而不同)하듯, 처음도 또 중간도 끝도 좋은 인연이길, 그녀의 삶이 매 순간순간 꽃처럼 피어나길 이 가을 두 손 모아본다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