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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새해, 따뜻한 햇볕과 손길을 줄게

밀교신문   
입력 :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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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가까이 앓다 일어나 바라본 새벽은 몹시 고요하고 경이롭다. 작년 9월 코로나로 고생을 된통 한 뒤로는 감기의 자만 들어도 몸서리를 쳤다. 아플 때도 됐지, 생각해보면 한 번도 몸에 대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하기까지 했다

12월 월초불공을 시작하면서 올해 마무리하는 식재와 다가올 갑진년을 나름 값지고 멋지게 내심 맞이하고 싶었다. 내 바람은 여지없이 빗나갔고, 뒤늦게 시작한 늦깎이 대학원 공부가 막바지 졸업을 앞두고 힘에 부쳤나 보다. 얼마나 무성의하게 몸을 홀대했던지 몸이 견디다 못해 파업에 들어간 셈이다. 전 상태로 몸을 리셋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마구마구 먹었다. 속은 온종일 불편한 상태로 시간은 흘렀고, 일정한 루틴도 없이 3주 내내 주위는 산만하고 분주하기만 했다.

 

얼마 전 열반한 워런 버핏의 투자 멘토였던 독서광 찰리 멍거는 내 나이 92세에도 여전히 무식해서 배울 것이 많다는 게 참 다행입니다라고 남긴 그의 말은 내게 의미심장하게 와닿았다. 여전히 우리는 하루하루를 겸손과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하고 부처님이 가셨던 그 길을 길 없는 길을 묵묵히 배우며 걸어가야 한다. 올해는 갑진년 청룡의 해다. 전설에는 용이 도를 깨치면 비늘의 색이 파란색이나 초록색으로 변해 청룡이 된다고 한다. 파란색은 고사하고 용 근처에 머무르기만 해도 아니, 그림자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복된 한 해가 되리라 장담한다.용과 관련된 전설도 많이 등장한다.

 

신라시대 장마가 지면 안강 지역과 경주 도심에 이르기까지 물이 고여 물난리로 인해 피해가 매우 컸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한 왕자가 신에게 물난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간청하는 백일기도를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신인이 나타나 말했다

 

형상 밑에 가서 이 주문을 외워라. 그러면 너는 구렁이가 될 것이다. 구렁이가 된 너를 보고 용이라 부르는 사람이 나타나면 너는 용이 될 것이다. 용이 되면 하늘로 오르면서 꼬리로 산의 꼭대기를 쳐라. 그러면 산이 갈라져 너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왕자는 주문을 외우고 큰 구렁이가 되었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마다 !, 구렁이 봐라.”하며 놀라 도망칠 뿐 아무도 용이라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왕자는 실망하여 넋을 잃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우는 아이를 업고 달래려고 자꾸 울면 저 구렁이가 널 잡아먹는다."고 말하자 신기하게도 어린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며 할머니, 구렁이가 아니라 용이야! !”이라고 소리쳤다. 순식간에 구렁이는 용으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오르면서 힘껏 꼬리로 산꼭대기를 쳤다. 천지가 진동하면서 산이 두 쪽으로 갈라져 안강 지역에 고여있던 물이 빠져 큰 강을 이루었다. 그 강이 지금의 형상강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 잘려나간 산꼭대기가 동해로 날아 떨어져 호미곶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처럼 용은 다방면으로 오곡 풍작을 가져오고 도량이 커서 생명력과 풍요가 넘쳤다. 불교에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인 여덟 용왕인 난타, 발난타, 사가라, 화수길, 덕차가, 아나바달다, 마나사, 우발라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새해 새날 아침 김기택 시인의 시 <걸레질하는 여자>를 떠올린다. “걸레질을 하려면 무릎을 꿇어야 한다./ 허리와 머리를 깊이 숙여야 한다./ 큰절 올리는 마음으로/ 아기 몸의 때를 벗기는 마음으로 닦지 않으면/ 방과 마루는 좀처럼 맑아지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는 방과 마루에게 먼지에게/ 매일 오체투지하듯 걸레질을 한다(김기택 걸레질하는 여자부분). 새해에는 무성한 마음 밭 잡초도 뽑고, 마음 방에도 걸레질이 필요하다. 그렇게 큰절 하듯 걸레질의 기본은 겸손과 하심, 겸손과 하심할 때 가장 큰 공덕이 일어난다. 일과 수행이 다르지 않듯 제대로 된 걸레질은 수행하는 마음과 같아야 한다. 부디 잊지 마시라. 갑진년 새해, 올해도 모두에게 따뜻한 햇볕과 손길을 부지런히 나누어 줄게.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