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81

허일범 교수   
입력 : 2005-07-29  | 수정 : 200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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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불감의 밀교적 의미) 1) 불감의 유래와 특징 송광사에 전승되고 있는 많은 문화재 가운데서도 밀교적 관점에서 보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 고봉국사의 지불이었던 불감이다. 이 불감은 일명 주자원불이라고도 불리며, 현재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서 이 불감의 소지자였던 고봉국사는 고려말에서 조선초기까지 생존했던 인물로 출생연대는 분명치 않지만 황해도에서 태어나 20세에 출가, 1428년에 입적한 것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이 불감은 소지자의 생존연대로 미루어보아 고려말에서 조선초의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제작연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다만 불감의 상단을 장엄하고 있는 푸른색 구슬장식의 형식으로 보아 티베트나 몽골불교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된다. 이 불감에는 본체에 삼존불과 네 보살, 그리고 두 아라한상이 부조되어 있으며, 문에도 두 보살상이 부조되어 있다. 불감의 상단에는 비밀실지진언 다섯 자가 부조되어 있고, 진언자 위에는 다섯 존상이 나타나 있다. 현재까지 이 불감에 대해서는 미술적인 측면에서 조명되었을 뿐 신앙적이나 교리적인 측면에서 다루어진 예가 없기 때문에 불감의 제작 목적이나 제존과 종자진언과의 관련성에 관한 연구는 진행된 바가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그간 불교계나 학계에서 진행되지 않았던 몇 가지 내용들에 대해서 검토해 보기로 한다. 2) 제작의 목적과 구조 이 불감의 크기는 높이 16cm, 폭 13.3cm의 소형불감이며, 재질도 목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몸에 지니고 다니기 편리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고봉국사 소지의 지불이라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전설이 사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불감은 거기에 부조되어 있는 존상이나 진언종자의 구성으로 볼 때 교리적으로 체계적일 뿐만이 아니라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불감의 상단에 부조되어 있는 다섯 글자는 비밀실지진언이다. 이 진언은 우리나라에 전승되고 있는 제불보살복장단의식에 의하면 다섯 자로 된 복의 밭이자 법신의 공덕을 다섯으로 나누어 나타낸 것이며, 우주의 진리를 이 다섯 글자에 함장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리고 이 다섯 글자는 다섯 가지 지혜를 의미하는 본체이기 때문에 그것은 곧 삼밀이며, 삼밀은 삼신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여기서 우리들은 이 불감에 부조되어 있는 진언종자와 오불, 그리고 중존인 삼신불이 상호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교리체계로 되어 있으며, 그 교리를 근간으로 한 공덕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다섯 자의 비밀실지진언을 오지와 삼밀의 체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은 이 불감에 표현되어 있는 중심의 삼존이 법신의 삼밀을 나타낸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중앙의 삼존불에 대해서 비로자나불, 로나사나불, 석가모니불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나 이것은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나아가서 이 다섯 자의 진언종자는 미간에 암자를 안치하여 불안을 부르고, 눈썹 위에 밤자를 안치하여 법안을 부르고, 눈 위에 람자를 안치하여 혜안을 부르고, 눈망울에 함자를 안치하여 천안을 부르고, 눈 아래 캄자를 안치하여 육안을 부르는 공덕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진언종자는 지수화풍의 오대에 배대하여 암자는 대지를 주재하는 힘이 있으며, 밤자는 산하에 펼쳐진 모든 존재를 주재하는 힘이 있으며, 람자는 불기운을 가진 일월성상을 주재하는 힘이 있으며, 함자는 오곡백과를 주재하는 힘이 있으며, 캄자는 인간의 부귀복덕을 가져다 주는 힘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고봉국사가 소지하였던 이 불감은 교리적인 측면이나 신앙적인 측면에서 출세간적 공덕성취와 더불어 세간적 공덕성취를 목적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3) 교리적 의미와 가치 우리나라에는 진언종자를 신체의 각 부위에 포치하여 독송함으로써 그 공덕을 성취할 수 있다는 신앙이 전해져 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송광사 불감에 부조되어 있는 비밀실지진언은 금강계오부와의 관련성으로부터 신체의 오장까지 관련이 있는 매우 의미 깊은 진언이다. 먼저 불감의 상단에 부조되어 있는 암밤람함캄의 다섯 자는 금강부, 연화부, 보부, 갈마부, 불부를 의미한다. 이 오부는 밀교경전 중에서도 유가부 밀교경전에 나타나는 부족의 구성방식이다. 여기서 오부는 금강계만다라의 오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각 부의 주존은 오불이다. 즉 금강부는 아축불, 연화부는 아미타불, 보부는 보생불, 불부는 대일여래이다. 따라서 이 다섯 자의 종자 위에 부조되어 있는 다섯 존의 존형은 각각 오부의 주존인 대일여래, 아축불, 보생불, 아미타불, 불공성취불의 오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불감에 부조된 암밤람함캄의 다섯 자는 오부오불의 공능을 성취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나아가서 이 불감은 개인의 지불이었기 때문에 소지자 자신를 수호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제불보살복장단의식에는 오부오불과 우리들의 오장과 배대하는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이것은 오불의 공능을 인간의 신체에 배대하여 그 가피를 입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 배대방식은 밀교경전 중에서도 최후기에 성립된 시륜경류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부오불과 오대, 그리고 오장의 상호 배대방식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전승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 원류는 송나라 때 편찬된 체본금강정경(體本金剛頂經)에 설해져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거기에는 암자는 금강부로서 동방의 아축불, 오장 중에서 간을 주재하며, 밤자는 연화부로서 서방의 아미타불, 폐를 주재하며, 람자는 보생부로서 남방의 보생불, 심장을 주재하며, 함자는 갈마부로서 북방의 불공성취불, 신장을 주재하며, 캄자는 불부로서 중앙의 대일여래, 비장을 주재하며, 이것은 오륜오지를 이룬다고 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송광사 전승의 불감은 티베트나 몽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교리적으로나 신앙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히 금강계 오부와 오불, 그리고 비밀실지진언을 통한 신체의 오장과의 관련성을 소규모의 공간을 통해서 표현한 매우 가치 있는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