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13

허일범 교수   
입력 : 2001-07-28  | 수정 : 200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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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식재도량 1. 식재도량의 성격 고려시대 식재도량의 성격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엄습해오는 재해와 고난을 잠재우는 세간적 실지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도량과 내적으로 축적되는 번뇌와 죄업을 소멸시키기 위한 출세간적 실지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도량이다. 칠구지불모소설준제다라니경에서는 죄업을 소멸시키고, 장애를 제거하며, 재해를 물리치고, 질병을 막는 것을 식재라고 정의한다. 나아가서 실혜의 호마법약초에서는 식재의 종류를 멸죄식재, 멸고식재, 제난식재, 실지식재 등 4종류로 나누고 있다. 여기서 실지식재는 출세간적 실지성취이며, 그 나머지는 세간적 실지성취에 해당한다. 이 도량은 고려시대 가장 보편적으로 개설된 기도도량이며, 그 대표적인 예로 소재도량, 불정도량, 공작명왕도량, 마리지천도량 등을 들 수 있다. 이 도량들은 크게는 국가적인 천재지변을 없애고, 작게는 개인의 질병, 재앙 등을 소멸시켜 복지구족의 불국토를 건설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지력과 행자의 공덕력으로 업장을 소멸시키고, 제액을 단제할 수 있다고 보는 대승불교의 입장을 전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는 별자리의 운행을 관찰하여 불길한 징후가 발생했을 때 앞으로 다가올 병충해나 홍수 및 가뭄에 대비하는 도량, 육도중생을 구제하여 세간을 정화하고, 불국정토를 건설하기 위한 도량, 질병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을 병고로부터 해탈시키고, 무명으로부터 유래한 모든 고통의 근원을 찾아 없애기 위한 도량들이 개설되었다. 이와 같이 당시의 식재도량들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은 물론 신행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기도도량이라고 할 수 있다. 2. 식재도량의 수법 고려시대에 개설되었던 식재도량은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그에 대한 구체적인 수법절차는 관련 경궤를 통하여 그 내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당시의 수법도량에서는 도량의 종류에 따라서 소의로 하는 경궤가 있었으며, 그들 수법의 기본틀은 밀교경전의 호마의식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소실지갈라경에는 "재앙을 물리치는 호마법을 행하려는 자는 삼보에 귀의하고, 마음속으로부터 자비심을 일으켜서 청명한 달이 뜨는 날의 저녁때에 지심으로 행하면 식재를 성취한다. 몸에는 백색의 옷을 걸치고, 길상초에 앉아 얼굴을 북쪽으로 향하고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해야한다"라고 설한다. 또한 비장기에는 "의식의 집행자는 관상을 통하여 자신이 법계에 두루 차서 백색의 둥근단을 이루고, 스스로 자신의 몸은 하나의 법계이며, 입은 화로의 입구이며, 하나의 법계인 내 몸은 비로자나여래가 된다. 나의 털구멍에서 우유의 비를 내리게 하고, 법계에 두루 차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그리고 커다란 지혜의 광명을 발산해서 업과 번뇌를 사라지게 하고, 악업을 소멸시키며, 지옥의 화염을 잠재우고, 아귀의 배를 가득 채워주며, 일체중생의 업번뇌에서 나오는 나쁜 일들을 제거하고, 자타평등하게 법의 이익을 얻도록 하여 대반열반을 성취하도록 한다"라고 설한다. 여기서 식재수법의 시간은 초야가 좋은데 그것은 하루종일 일을 하고, 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계절 중에서는 겨울이 좋은 데, 그것은 이 계절에는 모든 초목의 활동이 멈춰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본존과 공양물을 백색으로 하는 것은 백색의 물은 부정한 것을 씻어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이 불을 제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로자나의 지혜의 물은 중생들의 번뇌를 씻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3. 식재도량의 개설 흔히 고려시대불교를 의식에 치우친 형식적인 불교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 개설된 수많은 도량들은 불교에 대한 신행을 고양시키고, 현세의 행복과 불법의 체득을 목표로 한 매우 이상적인 불교신행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소재도량은 불길한 징후를 소멸시켜 앞으로 닥쳐올 어려움을 미리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기우도량이나 문두루도량 등이 재난을 당하여 그 재난을 물리칠 목적으로 개설된 데 반하여 소재도량은 닥쳐올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차원에서 개설되었다. 고려시대 왕실에서 개설한 소재도량은 130건이나 되는데 그 가운데 58건은 원종과 고종 때에 집행되었다. 고려 명종 10년에 개설된 소재도량은 천재지변의 징후를 감지하고 그것을 예방하려는 것이었으며, 충렬왕 9년에도 같은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그 소의경전은 불설치성광대위덕소재길상다라니경이나 소재일체재난다라니경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수법절차는 이 경의 내용을 근간으로 하여 호마의궤의 차제를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두 번째로 불정도량은 부처님의 정수리에 솟아 있는 육계를 뜻하는 불정에 대한 신앙을 근간으로 한 도량으로 소재를 목적으로 자주 개설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불정다라니탑을 건립하여 세속의 번뇌를 소멸시켜 모든 죄를 없앨 수 있다는 다라니신앙도 널리 유포되어 불정다라니당의 건립이 유행한 일도 있다. 이 도량은 당시 불정도량 또는 불정소재도량, 불정오성도량 등으로 불리었다. 불정도량과 관계되는 의식집으로는 불정존승심의궤, 불정존승다라니경, 불정존승다라니염송의궤, 불정대백산개다라니경 등이 있다. 현재 우리 나라에는 당시와 같은 형태의 불정도량이 전승되고 있지 않지만 본도량에서 의식집행의 일부분을 차지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불정존심다라니 즉 수능엄신주가 현재 사찰에서 예불을 드릴 때에나 그 밖의 재공이 있을 때 널리 독송되고 있다. 세 번째로 공작명왕도량은 공작명왕을 본존으로 하여 개설된 도량이다. 여기서 공작명왕은 화엄경의 주존인 비로자나불의 권속신으로서 독사를 잡아먹는다는 공작을 신격화하여 모든 재난을 물리치는 상징으로써 신앙되었다. 그 수법절차는 공작명왕을 도화하여 안치한 다음, 재앙의 소멸을 기원하는 차제의 형식을 취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고려 때 자주 개설되었으며 외적의 침입이나 홍수 등 천재지변이 있을 때 개설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1111년 문덕전에서 국난극복을 위하여 개설된 공작명왕도량이다. 조선시대 이후에는 공작명왕에 대한 신앙은 약화되어 갔으며, 불법을 수호하는 104위의 신장 가운데 하나로써 신중탱화 중에 수용되어 현재까지 미미하나마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네 번째로 마리지천도량은 불설마리지천다라니주경을 소의로 하여 각종 재난을 없애기 위해서 개설된 도량이다. 인도의 토속신중의 하나인 일광의 신 마리치가 불교의 호법신으로 수용되면서 마리지천에 대한 신앙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마리지천은 얼굴이 셋이고 팔이 넷인 천신으로서 항상 재난을 없애고 만복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또한 전쟁에서 승리를 약속하는 군인의 수호신으로서 신봉되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 묘통사에서 1066년부터 1210년까지 여러 차례 이 도량이 개설되었으며, 그 의식에는 언제나 국왕이 친히 행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