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16

허일범 교수   
입력 : 2001-09-17  | 수정 : 200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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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진언다라니신앙 1.다라니 신앙의 형성 고려시대의 불교는 4종수법도량이 개설되고, 오불만다라신앙이 전개되는 등, 밀교적 신앙형태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진언다라니만을 도립시켜 독송및 관법, 법구의 조성, 복장안치등에 활용하는 일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것은 육자진언관련 찬술집의 편찬이나 범종, 복장유물에 새겨 넣은 다양한 형태의 진언다라니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양상은 세간적인 소원성취를 도외시 하지 않은 고려불교의 특징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진언다라니 신앙은 불보살상과 같은 유형적인 신앙대상에 대한 예배가 아닌 음성이라는 무형적 방편을 통한 신앙형태이기 때문에 한층 신비감을 더해준다. 다시 말해서 유상존격에 대한 신앙이 지극정성으로 예배하고 공양함으로써 신앙대상과 자신을 일체화시켜 가는 방법이 주된 목적이라면 진언다라니신앙은 자신의 내면세계로부터 잠재의식을 일깨워서 신앙의 대상이 떠 오르도록 만드는 방식인 것이다. 원래 진언다라니는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공덕력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도 광대하다고 하여 그 뜻을 취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되어 왔다. 그래서 중국의 한역경전에서는 현장이후에 5종불역이라는 불문율이 적용되어 왔다. 첫 번째로 비밀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번역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즉 다라니는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설해서는 안되고, 수행이 이루어진 사람에게만 비밀로 전해야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다라니에는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그 포괄적인 의미를 함부로 번역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면 범어로 바가바트에는 세존이라는 의미이외에도 여섯종류나 되는 뜻이 더 있으니 번역하면 자칫 의미가 전도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염부수와 같이 중국에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번역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네 번째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와 같이 선례에 따라서 번역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섯 번째로 역어의 의미를 존중하기 위해서 번역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반야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심오한 느낌을 가지게 하나 지혜라고 번역해버리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칙은 한역경전이 전파된 지역뿐만이 아니라 티베트의 경전번역에서도 적용되었다. 여기서 경전의 번역에서 원음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진언다라니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신비로움을 더해갔고, 신앙의 수단으로 까지 전개되었던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태조이래 이러한 진언다라니가 다양한 방면에서 신앙적으로 십분 활용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가 집권하고 있던 시기에는 인도의 밀교승 마후라와 실리박일라가 들어 와서 인도 유가부밀교의 행법과 관련 진언다라니가 전해졌다. 그리고 인도의 지공화상이 들어 와 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의 공덕에 대한 설법과 법회가 이루러지면서 진언다라니신앙은 한층 고조되었다. 그와 더불어 진언다라니를 써 넣은 법구의 제작도 활발히 이루어져서 범종, 금고, 향완및 다라니당에 발원자의 기원을 담는 신앙형태도 보편화되어 갔다. 그런 가운데 화성의 봉림사에 다라니신앙의 극치를 이루는 새로운 형태의 복장봉안 진언다라니가 조성되기도 했던 것이다. 2. 다라니신앙의 표현방식 1) 진언성취의 표현 충숙왕때 고려에서 제작되어 일본에 전해진 나가사키현 보광사의 금고에는 42자의 진언이 새겨져있다. 여기서는 진언을 통하여 피안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그 세계는 자비와 재보가 가득찬 세계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 금고의 표면은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거기에는 반야심주, 마니주, 육자진언등이 차례로 새겨져있다. 그 첫 번째 부분에는 "아 가테 가테 파라가테", 두 번째 부분에는 "파라 삼가테 보디 스바하 훔", 세 번째 부분에는 " 이 타드야타 옴 마니 마니 마하마니 스바하 옴 마니 파드메 훔"이라는 종자자와 진언이 새겨져 있다. 이들 진언종자의 성격을 나누어 보면 반야심주를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분에 넣고, 세 번째 부분에는 육자진언과 재보획득의 성취를 기원하는 마니주를 나타내고 있다. 이들 진언종자의 내용을 살펴 보면 참으로 소박하면서도 현세복락을 추구하기 위한 선인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즉 이 금고의 제작발원자는 맨 먼저 본불생의 세계를 아자로 나타내고 나서 반야심주를 통하여 피안이라는 곳에 완전히 이르렀을 때, 그 세계는 어떤 곳인가를 육자진언과 마니주를 통하여 표현했다. 즉 그 곳은 연꽃이 만발한 세상에 자비와 재보가 충만하고,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 곳이라고 말한다. 2) 소원성취의 표현 고려시대의 것으로 경기도 화성의 봉림사에서 발견된 서원다라니부는 다라니와 부적이 함께 들어 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것은 발원자의 뜻에 따라서 소원성취의 목적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서원다라니부에는 첫 번째로 삼보에게 귀명하고, 자애로운 대비를 갖춘 관세음보살에게 귀의한다는 불정관세음보살모다라니를 필두로 하여 두 번째로 보주의 서원력으로 마장울 물리친다는 소보루각주, 세 번째로 장애가 되는 것들을 결박하여 철저히 깨뜨린다는 실달다파달라주가 쓰여 있고, 네 번째로 식재의 광명이 발하기를 기원하는 소재길상다라니가 있다. 이 다라니는 식재의 주문으로 널리 쓰이며, 부처님의 대위덕광에 의해서 악운을 가져다 주는 별들이 흩어지고, 행운을 가져다 주는 별들이 나타나 복을 가져다준다는 진언이다. 다섯 번째 대보루각주는 멸죄를 주목적으로 하고, 식재와 증익을 기원할 때 독송한다. 여섯번째 청정성의 획득을 기원하는 대준제다라니, 일곱번째 자비와 재보와 오불의 공덕 성취를 기원하는 육자주, 여덟번째 자신의 완전한 정화와 청정무구한 불광이 비추기를 기원하는 벽제일체천마신주를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중간부분에는 서원하는 바에 따라서 정토에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여의인부과 생정토인부, 악귀가 범하거나 더위를 느끼지 않고, 열병을 앓지 않기를 기원하는 염제귀부·피열부· 퇴온부, 모든 죄를 멸하여 불과 같이 되고,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며, 삼재를 잠재운다는 멸죄성불과부·피구설부·소삼재부, 출산할 때 난산을 피하고 태아의 건강을 기원하는 능산인탄지태의즉출부와 구산난부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시주자의 발원대로 항상 천하가 태평하고, 나라가 융성하며, 백성이 평안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이것은 불법이 날로 번창하여 세상에 널리 홍포되고, 모두 병들지 않고 재앙이 일어나지 않으며, 대대로 대자재를 얻게 해달라는 진언다라니 신앙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