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밀교전개사 17

허일범 교수   
입력 : 2001-09-27  | 수정 : 200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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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오륜탑 신앙 1. 고려의 밀교와 오륜탑 오륜탑은 밀교경전이 성립된 이후부터 등장하는 밀교 우주관의 상징적 표현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일경이 성립된 이후부터 그 계통의 논소나 찬술집 등에서 오륜을 근간으로 한 교리가 확립되고, 수행법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수행자와 오륜을 일체화시키는 행법으로 정형화되었다. 나아가서 대일경이 유포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탑을 건립하거나 사리함, 묘탑을 조성할 때, 오륜의 교리를 널리 활용함으로써 문화적이나 신앙적 차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반면 우리 나라에서는 오륜의 교리를 기반으로 한 수행법이나 탑의 건립이 일반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오륜탑에 대해서 친근감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래서 오륜탑의 모습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일본에서 도래한 것이 아닌가 의문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우리 나라에 묘탑형 오륜을 근간으로 한 수행법이나 탑의 건립이 일반화되지 못한 가운데 전통적으로 일본에서 오륜탑 양식이 묘탑의 건립에 널리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오륜탑의 전통이 전혀 계승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묘탑의 양식은 아니지만 고려시대 때 유골을 안치한 오륜탑 양식의 사리함이 제작되고, 석탑의 상륜부를 오륜탑 형식으로 조성하여 밀교의 우주관을 싱징적으로 표현한 예가 있다. 또한 오륜탑 양식을 부도탑의 조성에 적용하여 유골을 봉안하는 일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것은 고려시대에도 밀교적 성향의 사찰과 승려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중요한 단서라고 할 수 있다. 하여튼 고려시대에는 밀교승들의 법맥을 추적하기 힘들고, 어떤 것이 밀교의 사찰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지만 통일신라 이래 오륜의 교설와 신앙은 고려불교계에서도 살아 숨쉬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들은 경기도 양주의 수종사에서 출토된 사리함과 마곡사의 석탑상륜부, 오륜탑형의 부도들에서 고려시대 오륜탑신앙이 존재했음을 입증해주는 중요한 단서들을 발견할 수 있다. 2. 고려 오륜탑 신앙의 원류 오륜은 밀교의 우주관과 수행체계를 확립하는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즉 밀교에서는 오륜자체에 대해서 오대의 진리성을 원륜구족한 것으로 보고, 오륜성의 체득은 곧 법계의 원리를 체득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대일경과 존승불정수유가법의궤에 의하면 오륜은 우리 몸의 오체에 해당하며, 오지륜이라고 하여 수행자의 오륜은 법계의 오륜을 머금고 있다고 설한다. 즉 우주적 원리의 기본을 이루는 오륜을 수행자의 인체에 이식하게 되면 우주의 축소형인 인간오륜이 된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신라의 불가사의 아사리는 그의 저작인 대일경공양차제법소에서 오륜은 수행자의 몸을 통하여 체현 할 수 있으며, 온 몸에 이것을 관상포치하게 되면 정륜은 공대, 면륜은 풍대, 흉륜은 화대, 복륜은 수대, 슬륜은 지대를 이룬다고 보았다. 그야말로 오륜은 우주를 구성하는 근간으로써 이것을 행자의 몸으로 체현하면 행자자신이 오륜 만다라신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 공륜은 보주형, 풍륜은 반원형, 화륜은 삼각형, 수륜은 원구형, 지륜은 사각형으로 상징화시키고 있다. 이것은 인도의 우주관을 반영한 것으로 오대를 상징화한 모습이다. 이것을 다시 수행자의 몸에 배당했을 때, 배꼽 이하의 하반신은 사각의 지륜, 배 부분은 원구형의 수륜, 가슴 부분은 삼각형의 화륜, 목과 얼굴 부분은 반원형의 풍륜, 정수리 부분은 보주형의 공륜이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여기서 인체의 각 부위와 오륜의 상징성을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 상징형에 따라서 공륜은 우리의 머리 중에서 정수리의 모습을 상징화한 것이다. 풍륜은 목과 얼굴 부분을 상징화한 것으로 우리들의 호흡을 원활히 해주는 목과 코와 입이 이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화륜은 불꽃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상징화한 것으로 우리들의 심장의 활동력으로부터 나오는 체온을 나타낸다. 그리고 수륜은 물방울을 상징화한 것으로 우리들의 복부는 물을 성질을 가장 많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낸 것이다. 지륜은 우리 몸을 지탱해주는 받침역할을 하는 부분으로 지면에 항상 붙어 있기 때문에 사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와 같이 전우주적인 오륜을 우리들의 몸에 배당하여 그것을 수행법에 적용했을 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상징적으로 표상화 한 것이 오륜이다. 따라서 이 몸이 죽으면 다시 오륜으로 돌아간다는 신앙이 여기에서 싹텄던 것이다. 여기서 죽은 자의 유골을 봉안하는 사리함이나 사리탑, 그리고 부도를 만들 때에도 이와 같은 신앙적 바탕 위에서 오륜의 교리를 적용했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오륜탑 신앙의 원류는 신라의 밀교승 불가사의 아사리가 저작한 공양체제법소에서 그 경전적 전거를 찾을 수 있고, 고려시대 오륜사리함, 오륜형의 상륜과 부도의 경우도 이와 같은 밀교의 우주관을 반영하여 그것을 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고려 오륜탑신앙의 유형 우리 나라에 분포하는 유골 봉안장치들은 탑형, 석종형, 부도형의 세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탑형이나 석종형은 오륜탑의 원류로 볼 수 있고, 부도형은 오륜탑으로부터 파생된 또 다른 유형의 유골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첫 번째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보편화된 부도의 경우를 보면 오륜탑을 기본으로 해서 우리의 건축문화와 유골탑 양식이 가미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고려시대 부도의 특징은 사각과 원과 삼각을 강조하였고, 반원과 보주형은 축소해서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당시의 부도 조성자들이 오륜탑의 양식인 지수화풍공의 오대를 이원적으로 분리해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즉 우리들의 육신을 현상적으로 나타난 부분과 나타나지 않은 부분으로 나누어 오륜 중에서 현상적인 부분에 지수화를 배당하고, 현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무형적인 부분에 대해서 풍과 공으로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부도의 건립에서 유형적인 부분을 나타낼 때, 사각과 원과 삼각의 모습을 부각시켰고, 무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나타내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로 마곡사 대적광전 앞 석탑의 경우, 탑신과 상륜부의 양식은 탑형과 오륜탑의 양식을 두루 갖춘 새로운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 탑은 대적광전의 앞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본존에 대한 탑 공양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 양식을 살펴보면 오층의 석탑 위에 오륜탑을 올려놓은 독특한 모습이다. 이와 같이 수미산의 세계를 의미하는 상륜 대신에 밀교적 성격이 강한 오륜탑을 올려놓은 것은 고려후기 티베트불교의 양식이 몽골을 통하여 유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세 번째로 수종사의 오륜탑 형식의 사리함은 순수하게 유골을 봉납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형이다. 이와 같이 고려시대에는 오륜탑을 근간으로 한 다양한 종류의 탑과 사리함, 그리고 부도를 조성함으로써 오륜의 교리에 의거한 우리 나라의 특유한 오륜탑 신앙을 표출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