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청소년

“위풍당당 고구려 위상 가슴 뭉클”

편집부   
입력 : 2009-08-04  | 수정 : 2009-08-04
+ -

비로자나청소년 고구려ㆍ백두산 문화탐방

왜곡된 역사 하루빨리 바로잡았으면…
분단국가 현실 새기며 통일의지 다져

해발 2,774m로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 백두산.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기본 산줄기로 모든 산들이 여기서 뻗어 내렸다하여 예부터 성산(聖山)으로 숭배했다. 민족의 성산을 오르기 위해 전국의 비로자나청소년 60여명이 16시간의 항해 끝에 먼 길을 돌아왔다. 우리의 산을 우리의 땅으로 오르지 못하고 중국과 북한의 삼엄한 경계아래 둘러봐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지만 기후를 가늠할 수 없는 천지를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다함께 만날 수 있었기에 가슴은 벅차 올랐다.

비로자나청소년협회(회장 덕정 정사)는 7월 24일부터 29일까지 중국 일대에서 ‘2009 VIYA 청소년 고구려ㆍ백두산 문화탐방’을 실시했다. 전국의 청소년 60여명이 참가한 이번 탐방은 고구려 역사의 바른 이해와 백두산을 오르며 분단 국가의 현실과 통일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가 됐다.

w_img_4178.jpg

탐방 셋째 날인 7월 26일 백두산을 찾기 위해 새벽부터 서두른 탐방단은 서파를 따라 천지를 오르는 일정을 택했다. 전용 셔틀버스를 타고 백두산 서파를 올라 주차장에서부터 1,236개의 계단을 오르면 전체면적 10㎢, 평균 수심 204m의 넓은 호수 ‘백두산 천지’를 만날 수 있다. 백두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데에서 ‘천지’라고 이름 붙여진 이 호수는 1년에 몇 번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보통이다. 통계에 의하면 연평균 안개일자가 242일이라는데 그래서 맑은 날 천지를 보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얘기가 있다. 1천개가 넘는 계단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옷은 땀으로 흠뻑 젖고, 숨이 차오르지만 천지를 포기할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서로의 손을 이끌어 만난 천지는 과연 위대했다. 대전에서 참가한 정환석 군은 “백두산을 오르는 일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나 볼 수 없는 천지를 이렇게 보고 나니 힘든 줄도 모르겠다”면서 “모두 함께 매일 개명정진을 한 공덕으로 천지를 볼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욱 성스럽게 느껴진다”는 소감을 밝혔다.

w_ssl20971.jpg

천지에 올라 우측 한켠을 보면 ‘중국(中國)5’라고 쓰인 비석과 ‘조선5’라고 쓰인 비석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구분하기 위한 경계비이다. 한 발짝만 더 내딛으면 우리의 한반도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져온다. 여기에서는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치던지, 그런 내용의 현수막을 펼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탐방단은 활짝 열린 천지를 만끽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고 고구려ㆍ백두산 탐방단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은 접은 채 기념촬영을 하고 백두산을 내려왔다.

다음날인 탐방 넷째 날 고구려 최대의 영토를 확장한 광개토대왕비와 왕릉, 장수왕릉과 국내성 성벽과 같은 고구려 유적지를 찾았다. 광개토대왕비는 그의 아들 장수왕이 재위 3년(414년)에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높이 6.39m, 무게 37t의 세계 최고, 최대의 비석이다. 새겨진 글자 한 자 한 자 크기는 손바닥만하게 크게 새겨져 있으며 사면을 돌아가며 빽빽하게 새겨놓은 글자 수는 무려 1,775자인데 현재 알아볼 수 있는 글자 수는 1,590자 정도다. 머리위로 솟은 거대한 광개토대왕비를 보고 있노라면 위풍당당한 고구려의 위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포항에서 찾아온 최혜인 양은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부르고, 광개토대왕을 호태왕으로 부르는 등 한국의 역사가 다르게 불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역사가 왜곡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중국에 관람료를 내고 이 곳을 찾은 것이 아쉽다”며 비를 올려다봤다.

w_img_4268.jpg

w_img_4272.jpg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안에서 만난 임동환 군은 “중국이 우리나라에 비해 후진국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이번 탐방길에 올랐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중국은 훨씬 땅덩어리가 넓었고, 그래서 숨겨진 저력이 있는 것 같다”면서 “우리의 역사현장을 중국을 통해 찾아본다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전했다.

백두산= 김보배 기자 84bebe@milgyonews.net


w_img_4112.jpg

w_img_435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