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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만 출근합니다.

밀교신문   
입력 : 202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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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한테 또 한 소리 들었다. 집에서 근무가 되냐고. 엄마는 오늘은 출근하는 게 어떻겠니?”라고 내 눈치를 살피며 묻는다. 방에서 밤낮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모니터 앞에만 앉아 있는 딸의 엉덩이가 더 커지면 어떡하나 걱정되는 모양이다.

 

밖에 나가서 계절의 변화도 느낄 겸 조금이라도 걷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은 알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두꺼운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가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에 껴서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상황도 싫고, 실내 온도는 유난히 따뜻한 회사에서 겨울옷을 입고 앉아 있는 것도 불편하다. 집중해야 할 업무가 있는데 자리로 찾아오는 동료들과 한 마디씩 주고받는 게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 버릴 때면 오히려 마음이 초조해져 내 시간과 장소를 오롯이 컨트롤할 수 있는 조용하지만, 고독한 재택근무가 더 편하다.

 

갓 입사한 신입은 코로나 시기에 회사에서 마스크를 끼면 어지럽다며 냉큼 재택으로 전환하는 걸 보고 감탄했다. 신입사원의 솔직함인가 대범함인가. 근무 선택지가 생긴 만큼 각자의 방식으로 업무 효율을 높이며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 모든 게 가능한 이유는 개개인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존중해주는 회사 덕분이다. 그리고 재택 중 긴장감을 놓칠 수 없게 만드는 엄청난 업무량도 한몫한다.

 

일어나서 출근까지 고작 일곱 발자국이 필요하다. 가장 편한 복장과 아무것도 덧대지 않은 맨얼굴에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낀 채 직장인으로서 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재택근무를 하다 보면 끼니를 놓치기 일쑤.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컵밥을 먹거나 주말에 먹다 남은 음식을 데워 먹는 게 고작이다. 적게 먹으려 해도 워낙 활동량이 적어 살이 빠지긴커녕 미역처럼 쉽게 불어난다. 출근하는 컴퓨터 방이 가까운 만큼 냉장고도 가깝기 때문인데, 당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면 수시로 냉장고를 열어 손에 잡히는 간식들을 주워 먹으며 허기인지 스트레스인지 알 수 없는 기분을 잠시나마 달랜다.

 

의외의 변수는 문해력이다. 생각보다 우리는 대화하면서 눈빛, 손짓, 말투와 같은 비언어적 소통에도 영향을 받는데, 오랜 기간 집에 있다 보니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 저림 현상은 심해지고 어느 순간 말도 잘 나오지 않아 어리숙해지는 느낌이다. 종일 혼자 일하며 좁은 방에 갇혀 있느라 두뇌 회전이 느려졌달까. 마스크를 낀 채 유아기를 보낸 아이들은 입을 가리고 소통하다 보니 언어발달이 저하됐다는 사례를 본 적 있는데, 성인도 사회와 단절된 상황에 지속해서 노출되다 보면 언어 실력이 퇴화하는 걸 실제로 겪고 나니 편안함만 쫓을 게 아니라 불편함 속에서 건강함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 든다.

 

사람들과의 소통 능력을 키우기 위해 내일은 튼튼한 두 다리로 출근해 보리라. 그렇다면 출근을 결심한 나의 다음 할 일은? 내일 사내 식당 메뉴 확인! 역시나 밥심으로 살아가는 대한민국 직장인 8년차답다.

 

양유진/글러벌 서비스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