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 동안 깊은 땅속에서 봄이 오길 기다리며 씨앗은 새싹으로 태어날 준비를 한다. 가장 적당한 순간에 싹을 올리고 조금씩 자란다. 한 예로 체리 나무는 주변에 씨를 많이 분포해 놓는다. 그중에서는 100년을 땅속에서 준비하고 있는 씨앗도 있다. 그리고 2주간의 생을 위하여 7년을 애벌레로 살아가는 매미도 있다. 사람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아기들이 태어나서 12개월을 전후로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수천 번 넘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파민네이션의 저자 애나 렘키는 “1900년대 치료에서는 환자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는 고통을 감내하면 우리 몸이 호전되는 현상을 보인다”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 대의학에서는 환자의 고통이 병을 더 악화시킨다고 보고 고통을 덜어내고자 투여하는 진통제가 너무 과다하여 약물중독이 되어 환자들을 더 병들게 한다고 한다. 우리의 내면에는 수평을 유지하려는 저울이 있어 쾌락이 지나치면 오히려 고통으로 저울의 바늘이 움직여 수평이 되게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요즘 정신의 감기라고 하는 우울증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여기 갑자기 우울증에 걸려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제 손으로 밥도 먹지 못한 상태가 되어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하는 부인을 위하여 우울증을 공부하며 7년간 부인을 돌보았던 아빠가 가장 자랑스럽다는 아이들과 현재는 평범한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책까지 출간하였다. 병을 나은 사람들은 하나 같이 더 성숙해지고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그러나 대 다 수의 사람들은 힘든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불행해진다. 종조님은 부부 중 한 사람이 병이 나면 부부가 같이 불공을 하라고 하셨다. 특히 병 나으려고 기도하지 말고 잘못한 것 참회하라고 하셨고 교도가 진실로 뉘우칠 때 병이 나았다.
그렇다면 아프고 난 뒤 혹은 힘든 일을 겪은 다음 왜 더 만족하며 살까? 우리는 육체와 정신의 조화로운 상태가 되어야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물질적인 부분만을 강조하고 교육하다 보니 정신적인 교육이 너무 부족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해 우울증적인 정신질환이 많아졌다. 그리고 힘든 일을 견뎌내는 힘이 약하다.
<백문백답>에서 김형석 저자는 “내가 어머니와 아내의 병시중을 하지 않았다면 참 행복을 몰랐을 것이다. 그 고통을 피하려고만 해서 젊은 사람들은 참 행복을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종조님도 왜 참회하라고 하셨을까? 병은 나의 허물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것을 고치는 방법은 의학적인 방법도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법은 그 병을 일으켰던 잘못된 인과를 바로잡았을 때 세세생생 그 병이 낫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부부를 같이 불공 시켰을까? ‘상대자의 저 허물은 내 허물의 그림자’로 보셨기 때문이다. 내가 병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그런 인연이 있고 병이 생긴 원인의 50%는 상대 배우자에게 있다는 보신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평지를 걸을 때보다 계단을 오를 때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서 운동 효과가 크다. 그리고 시야도 더 멀리 볼 수가 있고 다양한 느낌도 받는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난의 연속이다. 다만 어릴 때는 그것을 놀이로 받아들여 성장하고 자랐다. 어른이 되어서는 고통은 최대한 피하고 쾌락만을 추구하려고 한다. 가끔은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잠시도 멈춰있을 수 없다. 끊임없이 자극과 반응을 반복하여야 한다. 모순된 점은 배고플 때 가장 음식이 맛있고 목이 마를 때 물이 가장 달다. 고난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허물을 없애고 성숙한 방향으로 나아가 행복하기 위해서 온다. 성숙은 고난의 명약을 많이 먹어야 이루어진다. 종조님은 허물 고치는 방법으로 누가 내 허물을 말하면 즐겁게 듣고 스승과 친구와 부모에게 물으라고 하셨다. 허물을 없애려고 남에게 묻는 그 마음은 더 이상 고난은 고통이 아니고 성숙과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아는 것이다.
승수지 전수/항수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