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퇴직 이후 잊고 지냈던 설렘이 밤잠을 설치게 했습니다. 3박 4일간의 대만 불적지 답사를 위해 새벽을 열고 심인당에서 희사와 염송을 올리며 도반들을 기다렸습니다. 수각정사님과 유가회의 최고 연장자이신 상정 고문님을 비롯한 도반들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은 유가심인당 각자님들의 모임인 유가회가 창립 43년 만에 처음으로 나서는 해외 성지순례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더했습니다.
약 세 시간의 비행 끝에 가오슝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를 맞이한 것은 낯선 이국의 따뜻한 공기와 현지가이드였습니다. 첫 방문지인 불광산사(佛光山寺)에서는 수각정사님의 동국대 불교학과 선배이시며 불광산사 비구니이신 의인 스님께서 환대해 주셨습니다. 성운대사께서 창건하신 이 도량은 우리 진각종의 '삼밀관행'과 상통하는 '삼호(三好: 몸, 뜻, 입) 수행'을 핵심 가르침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특히 "나의 글자를 보지 말고, 나의 마음을 보라(不要看我的字, 請看我的心)"라는 성운대사의 간결하지만 뼈 있는 가르침은 순례의 여정을 시작하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수행적 울림을 안겨주었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불타기념관을 참배하며 순례자로서의 경건한 마음가짐을 되새기고 첫날밤을 맞이했습니다.
둘째 날 새벽 5시 30분, 불광산사의 웅장한 아침 예불에 동참하며 하루를 열었습니다. 이후 성운대사의 종조전과 미술관 등 거대한 가람을 둘러보며 대만 불교의 위용에 압도되었습니다. 이 웅장한 규모 앞에서 문득 우리 진각종의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종조 회당 대종사님의 업적을 더욱 널리 선양하고 기념관을 확장해야겠다는 뜨거운 서원을 가슴 깊이 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불광산사를 뒤로하고 난토우 지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서 공자와 관우를 모신 도교 사원인 문무묘(文武廟)와 삼장법사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현장사(玄奘寺)를 참배했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일월담(日月潭) 호수 주변을 거닐 때, 약 20년 전 9.21 대지진의 아픔을 딛고 훌륭히 재기한 대만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녁공양 자리에서는 여행의 피로를 풀며 유가회의 발전을 기원하는 법담을 나누었고, 도반들과의 끈끈한 정을 확인했습니다.
난토우 지역의 마지막 방문지인 중태선사(中台禪寺)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화강암 사천왕상, 만불전, 약사여래 7층탑은 물론, 탄탄하게 갖추어진 불교교육 시스템을 통해 대만불교의 현대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남방 보생불과 서방 아미타불 불상을 친견하며 진언행자로써의 깊은 불연(佛緣)을 되새겼습니다. 또한, 환경보호를 위해 향을 피고 초를 켜는 대신에, 옥 모형의 초와 향나무를 사용하는 대만불교의 실용적 변화는 우리 종단이 참고해야 할 시사점을 던져주었습니다.
오후에는 타이베이로 이동하여 자항사(慈航寺)에서 등신불을 참배했습니다. 미타청정전에 모셔진 아미타불 불상이 우리 불국사 석굴암 불상을 본떠 제작되어 모셔진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한국불교와 대만불교의 끈끈한 인연에 감동했습니다. 마지막으로 290년 역사의 타이베이 명승지 용산사(龍山寺)를 찾았습니다. 보현·문수·지장보살 등 다양한 불보살님과 관우상이 모셔진 이곳에서 수많은 인파가 저마다의 간절한 소원을 비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합장 발원했습니다.
순례의 마지막 날은 중국 5천 년의 유물과 보물이 집약된 대만 국립 고궁박물원 방문으로 장식되었습니다. 이곳은 단순히 유물을 모은 공간이 아니라, 중국 대륙에서 국민당이 철수할 때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집단의 기억 공간' 이었습니다. 유물 하나하나에 담긴 역사의 무게와 이를 보존해 온 대만의 저력 앞에서 숙연함을 느꼈습니다.
비록 대한민국보다 작지만, 도도하게 불교문화와 역사를 품고 있는 나라, 대만. 이번 3박 4일의 불적지 순례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깊은 성찰의 의미를 남겼습니다.
3박 4일간의 대만불교 불적지 답사는 단순한 답사 이상의 가치를 지녔습니다. 특히 스승님과 신교도가 함께한 유가심인당 최초의 해외 순례라는 기록을 남기며, 유가회 역사에 잊을 수 없는 한 페이지를 장식했습니다.
대만불교의 거대한 규모, 대중성, 그리고 환경을 생각하는 현대적 변화를 직접 경험하며, 우리 진각종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방향성을 깊이 고민하는 귀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법담(法談)이 소중한 자산으로 빚어진 이 3박 4일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 걸으며 미소를 나누고, 깨달음을 구하며 마음을 모았던 도반들과의 끈끈한 정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유가심인당 각자님회인 유가회가 더욱 발전하여 정례적으로 해외 성지순례를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서원합니다. 이 경험이 씨앗이 되어, 우리 모두의 수행이 큰 공덕으로 회향되기를 서원합니다.
승정 각자(유가심인당 유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