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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자란다

밀교신문   
입력 :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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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년의 문화와 역사가 주로 잘 보존되고 밀집되어 있는 공간이 경주 황남동 일대와 그 인근지역이다. 첨성대를 위시하여 대릉원, 월정교, 동궁과 월지(안압지), 교동(최부자 집), 분황사, 석빙고, 반월성 등등 많은 문화유적들이 들어서 있다. 지난 3월의 끝자락 경주교구청인 홍원심인당이 새 신축부지가 있는 황성동으로 이전을 했다. 임시 심인당으로 이전하기 전 여러 종사님들께서 심인당에 방문하여 신축불사가 원만히 회향되기를 서원하는 강도불사를 올렸다. 지극한 마음으로 정성스레 올린 불공공덕 덕분에 지금 이 순간에도 아무런 장애 없이 순조롭게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황남동에 있을 때 교동의 최부자 집을 돌아 가벼운 산보를 하곤 했다. 최부자 어른의 호가 대우(大愚)라는 사실을 경주에 와서 그것도 각자님을 통해 처음 알았다. 자신의 삶을 화려한 스펙을 쌓는 데 매진하기보다는 어떤 가치 있는 활동들을 많이 했는가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단연코 최부자 어른의 삶 그 자체가 삶의 귀감이 되고 이정표로써도 충분히 손색이 없을 것이다. 어느 기관에서 당신은 삶에 있어 언제가 가장 기뻤냐고 설문조사를 했다고 한다. 사람마다 기쁨의 크기와 감동의 정도는 다 다를 수 있지만, 특이하게도 공통으로 공동체 감각으로써 사회에 참여하고 기여했을 때 가장 많은 기쁨을 느낀다 했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었을 때, 그리고 남들이 나를 필요할 때, 즉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했을 때 가장 높은 자존감이 생기고 기쁨을 많이 느꼈다고 답했다 한다. 결국 남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아름다운 삶임을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황성동은 젊은 신세대들, 특히 대단지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는 신도시라 해도 무방하다. 내가 머무르는 공간인 사택(충효동)이 아파트이기에 교화을 나와 처음 아파트 생활을 경험해 볼 수 있는 호사도 누리게 되었다. 편리하고 조용한 것은 좋지만 사람의 향기가 그리울 때가 많다. 바쁘다는 핑계로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별 관심도 없으며, 어쩌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가벼운 눈인사 정도가 다이다.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요즘 새로 이사하셨는데 이웃과 그리고 가족들과는 어떻게 잘 지내세요?”라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그러면서 친밀한 관계, 적대 관계, 아니면 소원한 관계로..... 어떤 관계로 지내세요.”라는 물음에 나는 대뜸 불편한 관계라고 말했다. 대답해놓고 난 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지금의 내 일상을 뒤흔드는 예리한 질문이었다.

 

어쩌면 내 마음 어딘가에 불편한 관계란 의미 속에는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저장하여 작동하고 있을 때 더 많이 발생했을 것이다. 긍정함이 삼밀인지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저마다 지은 업과 생활환경과 근기가 다르므로 탓할 수만은 없지만, 최소한 업력에 끄달려 사는 삶은 살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충분히 좋은 관계란 무엇일까. 왜곡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려 받아들이기로 이해해도 될까. 그러면서 하루빨리 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늘 깨어있기를 서원하며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까를 고민하게 된다. 자기와 나를 둘러싼 이웃들과 그리고 그들의 삶에 직접 개입해 경청하고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공감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전히 경청과 공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성직자의 역할이 상대방과 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달라이라마는 나의 종교는 친절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모든 살아 있는 생명 또한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자라고 있음을 가슴에 새기자. 이번 봉축 슬로건이 우리도 부처님같이 마음자비를! 세상평화를!”이다. 부디 슬로건이 무색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