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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나무

밀교신문   
입력 :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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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당신의 쉴 곳 없네/중략/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무성한 가시나무 숲같네/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얼마 전 운전하면서 우연히 듣게 된 “가시나무”라는 노래의 노랫말입니다. 귀에 익숙할 정도의 유명한 노래였지만 새삼 노랫말이 가슴속에 긴 파장을 남깁니다. 잔잔한 선율을 타고 흐르는 노랫말이 경건하면서도 아름답고 그리고 날카롭고 자기 통찰적입니다.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내 속에 가득한 ‘나’라는 생각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나의 고집, 나의 잣대, 나의 신념, 돌아보니 나라는 존재는 돌멩이보다 더 단단하게 똘똘 뭉쳐진 에고 덩어리였습니다. 이 ‘상(相)’덩어리가 나를 짓눌러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가족과 도반과 주위 사람들에게 한없는 상처를 남기고, 아이들에게까지 날카로운 아픔을 주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며 옵니다. ‘가시나무’는 나의 모습이자 우리 모두의 자화상으로 다가옵니다.
 
내 속에 있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은? 내 속에 있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은? 우리는 누구나 크든 작든 마음속에 하나 이상의 응어리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응어리들이 세월을 따라 무성한 가시나무 숲이 되어버린지 오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지경이기에 조그마한 바람만 불어도 외로워지고 괴로워지고 한없이 슬퍼집니다. 메마른 가지는 상대에게도 아픔이지만 자신에게도 차갑고 날카롭습니다.
 
청담 스님과 수월 선사의 일화입니다. ‘일찍이 청담 스님은 수월 선사의 명성을 듣고 간도를 찾아서 1년 동안 수월 스님을 모시고 정진했습니다. 떠나는 날 청담 스님은 수월 스님이 손수 만들어준 주먹밥과 짚신을 받아들고 마지막 절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수월 스님은 갑자기 청담에게 곳간에 가서 괭이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괭이를 가져오자 수월 스님은 바로 마당에 박혀 있는 돌멩이를 가리키면서 물었습니다. “저게 무엇인가?” “돌멩이입니다.” 청담 스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월 스님은 괭이를 빼앗아 들더니 돌멩이를 쳐내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청담 스님은 이 가르침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고 합니다.’ 청담에게 수월 스님의 괭이는 참으로 가슴속에 묻혀있는 응어리를 파내버리는 산 법문이었습니다.
 
회당대종사께서는 “우리교의 화두는 내 허물은 무엇인가 이다”라고 가르치십니다. 
 
내 허물을 참회하는 것은 내 마음속 응어리를 찾고 바라보고 없애는 수행입니다. 참회를 내 삶의 중심에 두어야합니다. 내가 밝아집니다. 나의 에고가 무너집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이,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이 무너집니다. 비로소 심인을 만나는 통로가 생깁니다. 법계법신이 자리합니다. 내가 쉴 수 있습니다. 내가 진정 쉴 수 있을 때 상대가 내 안에서 쉴 수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나’라는 생각들, 내 속에 있는 어두운 기억들, 나의 슬픔, 미움과 원망, 이러한 것들이 정화되지 않은 채 찌꺼기로 남아있으면 내 마음속 응어리가 되어 버립니다. 이러한 응어리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나를 지치게 하고 나를 괴롭게 하고 나를 힘들게 합니다. 내 속에 ‘나의 것’이 너무 많으면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내가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나를 비워내고 비워내고 비워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숨을 쉬어야 내가 살아갈 수 있겠지요. 나를 비워내고 비워내서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의 슬픔과 괴로움을 채워줄 수 있음이 자비입니다.
 
참회가 내 삶의 중심에 서면 내가 쉴 수 있습니다. 내가 쉬어질 때 상대가 쉴 수 있고 이웃이 쉬고 세상이 쉬고, 그리고 이 우주가 내 안에서 쉴 수 있습니다. 불공하는 자의 마음가짐입니다. 바람이 부는 이치를 깨닫게 되면 바람을 즐길 수 있습니다. 마장은 곧 법문이고, 공덕성취의 근본입니다.
 
보성 정사/시경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