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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 한 잔 하시지요’

밀교신문   
입력 : 201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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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뜨거워진 7월의 태양이 따가운 햇살로 일상을 물들이고 있는 계절에, 이른 아침 떠오르는 햇살과 함께 피고 석양과 같이 지는 연꽃(蓮花)이 한창입니다. 부용(芙蓉), 하화(荷花)라고 불리는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지만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고 항상 맑은 본성을 간직하고 있는 생태적 특징으로 인해 청결함, 무구함, 순수함으로 상징되어 수행의 이상과 함께 속세에 물들지 않는 불교 상징의 꽃으로 표현을 합니다.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혹은 항다반사(恒茶飯事)’라는 말은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는 것처럼 항상 하고 있는, 흔히 있는 일, 일상 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차 한 잔해요’, 점심을 먹고 난 후 커피 한 잔거의 매일 하고 있는 일상이지요?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다가, 업무를 보다가 그야말로 차 한 잔은 일상이고 다반사가 되어있습니다. 차는 이처럼 우리의 생활 속에 여유와 쉼표 역할을 하는 중요하고 효과 있는 한 잔의 차가 되어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로 일상이 되었습니다.

 

다선일여(茶禪一如)’, ‘다선 일미(茶禪一味)’. ()와 선()은 같은 것, ()와 선()은 같은 맛이라는 말로 모두 같은 뜻입니다.

 

불교에서 선()은 바로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하는 수행법으로, 또 차 마시는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을 맑고 고요하게 하는 수행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졸음을 쫓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차의 효능 덕분에 불가에선 오랫동안 차가 사랑받아 왔고, 국내 차 문화 역시 불교를 통해 계승·발전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다선일미’, ‘다선일여라는 말도 나오게 된 것으로 차와 불교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라는 매개체가 평상심을 찾는 수행 방편으로서 역할을 볼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조주선사의 차나 한 잔 마시게(喫茶去)”라는 선문답은 다선일미(茶禪一味)의 상징으로 여겨질 만큼 유명한 공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주선사(778~897)는 객스님들이 찾아오면 이렇게 물었다.

 

일찍이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스님이 답하였다. “일찍이 온 적이 있습니다.”

 

조주선사는 말하였다. “차나 한 잔 마시게(喫茶去).”

 

선사는 또 다른 스님에게 물었다. “일찍이 여기에 온 적이 있는가?”

 

그 스님은 답하였다. “일찍이 온 적이 없습니다.”

 

선사가 말하였다. “차나 한 잔 마시게(喫茶去).”

 

뒤에 원주스님이 선사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찌하여 온 적이 있다고 해도 차나 한 잔 마시게라고 하고, 온 적이 없다고 해도 차나 한잔 마시게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선사가 원주야!” 하고 부르자, 원주가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선사가 말하였다.

 

차나 한 잔 마시게(喫茶去).”

 

여기에서 조주선사는 세 사람에게 똑같이 차를 권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만난 적이 있는 사람, 자신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 그리고 자신과 늘 함께 있는 사람에게 끽다거(喫茶去)’라는 말로.

 

여기서 조주선사가 권하는 차()는 단순히 물질적 개념으로서 차를 마시라는 말이 아닌, 수행 방편으로서 또 다른 접근을 시도하게 만듭니다. 차는 정신적 개념과 물질적 개념이 연계되고 있기 때문에 차를 다룰 때는 정성을 들이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므로 하심하는 마음이 되고, 기다림으로 멈출 수 있어집니다.

 

찻자리를 함께 하는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차만 마실까요?

 

현재 우리가 접하는 시간에 깨어 있는 마음이 될 때, 지금 만나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일기일회(一期一會)’의 정신으로 우려 낸 한 잔의 차는 마음을 지금에 머무르게 합니다.

 

지금 여기[Now and Here]’를 알아차리고, 깨어있음을 동반한 차 한 잔 하시지요...’

 

심정도 전수/승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