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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도 업데이트가 절실히 필요하다

밀교신문   
입력 :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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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날부터 가슴이 마구 뛰었다. 오랫동안 잊고 살아서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을 합리화하며 가슴 뛰는 일을 가슴 설레는 일을 잊은 지 오래었다. 반야산악회에서 청도 기로원방문 일정이 잡혀 있다기에 흔쾌히 딸라 나섰다. 가을 산들은 어느덧 형형색색의 울긋불긋한 옷으로 가라 입고 겨울을 맞을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봄은 꽃이 있어 좋고, 가을은 단풍이 있어 좋고, 겨울은 눈을 볼 수 있어 좋다. 어느 계절인들 좋지 않은 계절이 있겠는가마는 나는 특히 가을을 좋아한다. 가을 나무들을 보면 문득 이런 생각들이 스치곤 한다. 가을 나무들은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온 몸으로 바람을 불러서 가지와 잎들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비우고 버림으로써 혹독한 겨울을 준비한다. 사계절 중 가을을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시기로 비유한다면 황혼이 아름다운 이유는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고 아름다움에는 늘 고통이 함께 따른다.

 

경주서 청도 기로원까지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기로원이 가까워질수록 내 몸은 약간 상기된 기분으로 긴장감까지 느껴졌다. 간단한 불사를 마치고 심인당 안을 둘러보니 기로스승님들은 4분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무도 온화하고 고운 미소로 우리 일행을 반겨주셨다. 그러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오랫동안 교화 일선에서 죽비를 잡고 수십 년의 인고의 세월을 함께 했을 그들의 얼굴에선 걱정과 그늘이란 찾아 볼 수 없었다. 불과 몇 십 년 전의 일이다. 그 시절 여러 스승님들이 기로원에 많이 계실 때였다. 한 전수님께서 기로원 방문하고 가면 교화가 절로 되고 더 잘된다.”고 하신 말씀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어찌 뿌리 없는 가지와 열매가 있겠는가. 선대스승님, 원로스승님은 나무의 뿌리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우리 무의식 깊숙이 자라 잡은 뿌리에 대한 자긍심보단 홀대의 부정적 감정이 더 팽배해 있다면 좀 곤란하다. 그런 집단은 오래잖아 멸망과 도태를 면치 못 할 것이다. 그러면서 진정한 발전적 진보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전통을 잘 보전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경청과 공감능력의 힘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생태계의 순환원리가 그러하고 자연의 원리가 그렇기 때문이다. 아무리 내게 하찮고 변변찮은 흙수저를 물려주었다 해도 뿌리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행들과 일정이 있어 방문을 급히 마치고 돌아 나오는데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정체모를 야릇한 감정을 나만 느끼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중 나온 사람이나 떠나는 사람이나 이심전심으로 통했을까 보내는 이나 떠나는 이 모두의 얼굴에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얇고 옅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 원로스승님들의 기운 받아 힘내서 교화하세요.”라는 무언의 격려가 담긴 고마움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고마우신 스승님들 또다시 나는 청도서 힘을 얻는다. 스승님들의 오랜 노고를 생각하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진다. 앙상한 겨울나무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한다면 인생 최고의 실수로 남게 될 것이다. 오랜 경험과 통찰력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송두리째 날려버리게 될 테니까. 살면서 어떤 마음과 행동으로 생활하는가는 매우 중요할 수 있다. 어떤 행동목표가 내 삶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는 내 자신에게 달려있다. 늘 불평불만만 하는 불평일기를 쓰도록 한 그룹과 감사일기를 쓰도록 한 그룹을 비교 연구한 결과를 보면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다. 감사 일기를 쓴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게 살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종조님께서 은혜는 평생으로 잊지 말고 수원은 일시라도 두지 말라고 하신 것은 어쩌면 우리의 삶이 늘 거꾸로 살고 있음을 경계한 것일 수 도 있다. 산악회 일정을 다 마치고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주어진 모든 환경이 이웃이 중생이 다 은혜인 줄 모르고 사는 일상이 가장 불행한 삶이다. 끝까지 이 길을 따라 이 길에서 탐욕을 덜어내고 은혜로 채우는 자아 성찰적 삶, 그러하기에 삶에도 끊임없는 업데이트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