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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아본다는 것은...

밀교신문   
입력 :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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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푸른 하늘과 다양한 색감으로 곱고 조화롭게 물든 자연은 가을을 한 폭의 수채화로 펼쳐 놓은 채 차갑지 않은 풀잎 소리 흔들림은 가을끝자락에서 아쉬움과 함께 우리 곁에 잠시 머물렀다 떠나려하고, 소리 없는 뒷모습 붙잡을 수 없어 낙엽만 보고 있는 사이, 어느새 성큼 기온이 떨어져 코트 깃을 세우고 움추린 종종걸음으로 겨울문턱에 들어섭니다.

 

오늘이 어제였고, 오늘이 내일이기에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인과법으로 연결되어 삶의 모습들을 시간들을 펼쳐보여주는 계절의 변화도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새롭게 느껴집니다.

 

항상 이맘때가 되면 올 한해를 어떻게 보냈는가?’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들이 많아집니다.

 

내 마음이 내 것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도 있었고, 마음을 새롭게 새로운 각오로 시작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원치 않는 일들도 생겼던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말을 하고 나서 흐뭇한 마음이 되었던 적도 있었을 것이고, 어떤 때는 분명 맞는 말, 옳은 말이었는데도 마음이 불편했던 시간들도 있었을 테지요.

 

바쁘다고 시간이 없다고 허둥대고, 덥다고 춥다고 투덜대었던 시간들, 일은 많이 한 것 같은데 이룬 것은 없는 듯하고, 생각은 많았지만 행하는 모습은 부족했던 것 같기도 하고, 놓치지 않으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무엇인지도 모른 채 꼬옥 쥐고 있었는데, 손을 펴 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낯선 느낌들 속에서, 그래도 여러 가지로 최선을 다하고 지낸 시간들 이었을겁니다.

 

마음이 움직여 한 생각을 일으키는 마음작용은 인연 따라 어떠한 모습으로든 되돌아와 내 앞에 현실에 와 있습니다. 마음만 일으켰다고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게 아니라, 일으킨 후 망각해버린 것들도 결국은 자동적으로 인과의 법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요. 주어진 환경, 펼쳐진 현재의 모든 것, 이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이 바로 인과인 것입니다.

 

속담 중 색안경을 끼고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선입견에 가려 사물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업()에 따라 자신의 의식세계에 상응되는 수준의 색안경을 끼고 살고 있습니다. 틀과 기준에 갇힌 생각으로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자신이 늘 현명하다고 정확하다고 착각에 빠져 본질을 못보고 오류를 범하게 합니다. 이렇게 색안경을 쓰고 사물을 본다거나 상대를 보는 것은 자신의 업에 따라 인식하고 인지한 눈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꽃은 비슷한 환경에서 서로 기대며 무리지어 피고 짐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진 세상에서 우리는 많은 모습들과 만나고 알아가고 헤어지는 관계로 일상이 펼쳐집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는 것처럼, 내 주위에 함께 어울리는 사람에 의해 내 삶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선택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가치관이나 마음이 바뀌면서 어울리는 부류도 자연의 법칙처럼 바뀌어 가게 마련입니다.

무언가 나름 열심히 했는데 결과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었던가요?

 

생각하고 선택한 결과의 기대치가 원하는 만큼 일치되면 좋겠지만, 인과법칙은 쉽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좋은 결과는 그냥 다가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내버려두어도 무성해지는 잡초처럼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정성을 들여 하나하나 잘 지키고 보듬어 키우는 과정을 통해 열매를 맺고서야 향기로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처럼 내면의 변화를 통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과정을 겪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시작을 할 때 항상 생각을 통해 마음을 일으키고, 실천으로 옮기면서 생활이 되고 반복되는 일상이 되어 내 삶의 모습을 만들어 갑니다. 모든 선택은 바깥환경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바람의 존재처럼, 모든 것이 나의 선택에 의해 결정 되어 새로운 인과를 만들어갑니다. 주어진 환경, 펼쳐진 현재의 모든 것이 바로 인과인 것입니다.

 

흐르는 물은 썩지도 얼지도 않지만, 물이 고여만 있으면 썩기 마련입니다.

 

내 생각이 어제의 생각에 항상 머물러 있고, 스스로가 정해놓은 고정관념에 묶여 틀을 깨지 않는다면, 고여 있는 물과 다를 바가 없겠지요.

 

하루를 정리하고, 한 달을 마무리 하는 것, 지금처럼 한 해를 돌이켜보면서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은, 인과로 펼쳐진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해서 가꾸고 펼쳐놓은 올해의 그림은, 내 모습은 어떻습니까?

 

심정도 전수/승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