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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아져서 오른다

밀교신문   
입력 : 2021-03-08  | 수정 :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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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겨울의 시간이 지나가고 어김없이 계절은 봄을 향하여 하루가 다르게 나아가고 있음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작년 벽두 이래로 우리 모두를 강타한 바이러스 사태도 이젠 어느덧 익숙해져 버린 느낌마저 느끼면서, 올해는 백신이라는 바이러스에 대한 인간의 지혜로운 대안으로 지난 일 년간 경제활동의 제약으로 인해 고통받아온 많은 이들이 하루빨리 그 같은 시련으로부터 벗어나기를 기대하며 또 그리되기를 손 모아 서원해 본다.

 

불자들 모두에게 널리 알려진 금강경 첫 부분에서는 부처님께서 머무시던 기원정사에서 나오셔서 탁발하시고 돌아오셔서 공양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거처로 돌아오신 후 공양하시고 발을 씻으신다는 내용이 나온다. 부처님께서는 맨발로 걸어서 마을에 탁발을 다니셨다고 한다. 그 당시에 부처님께서 신으실 만한 신발이 없으셨던 것일까? 아니면 부처님께서 신발 신기를 거부하신 것일까? 아마도 후자일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확인을 하지 못하고 있던 중 우연히 마주친 경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중아함경, ‘보리왕자에게 설하신 경에서 발지국의 보리왕자는 화려한 궁전을 완공하고 부처님을 초대한다. 왕자는 아무도 밟지 않은 계단에 하얀 융단을 깔고 부처님께 맨 처음으로 오르시기를 청하게 된다. 그러나 부처님은 융단 앞에서 걸음을 멈추시게 되고, 왕자는 거듭하여 청하게 되지만 부처님께서는 침묵으로 대응하게 됩니다. 이때 이 광경을 본 아난존자가 보리왕자에게 말합니다. “왕자여, 융단을 거두십시오. 세존께서는 융단을 밟지 않습니다. 여래는 가장 낮은 사람을 바라봅니다.”라고.

 

부처님께서 맨발로 다니는 것은 신발을 구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신발이 없어서 맨발로 다니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당시 인도의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이들은 신발 없이 맨발로 생활했던 것이며, 부처님께서는 수행자로서 세상에서 가장 낮은 이들과 공감하며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셨던 것이다. 경에 나오는 공양을 구하는 탁발(托鉢)도 사실 그 같은 실천의 연장 선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탁발도 좋게 표현한 말이며, 사실적인 표현으로는 걸식(乞食)이 아닌가? 걸식은 말 그대로 구걸하여 먹는다는 뜻이다. 출가수행자는 수행에 전념하며 그 어떤 생산 활동에도 종사할 수 없기에 걸식하는 것이 원칙이 된다고 한다. 그것은 수행자로서는 양식을 구하는 것과 동시에 시주자에 대한 하심(下心)의 실천이 되며, 시주자로서는 스스로는 출가하여 수행하지 못하지만, 수행자에게 보시하여 복덕을 쌓을 기회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부처님께서는 굳이 탁발하지 않으셔도 부처님께 공양하고자 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을 것이다. 굳이 마을로 나가지 않아도, 탁발을 하지 않고도 정사에서 편안히 공양을 받으시고 사시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수행자의 하심과 재가 시주자의 복덕이라는 양쪽의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탁발이라는 승단의 원칙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몇 년 전 종단에서 주관한 인도불적답사에 참여했던 때가 생각이 난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생존하신 지 26백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고 있는 나라와 많이 달랐고, 그 다름이 이국적이면서도 때로는 다소간의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여행의 기억들이라고 할까? 그중에서도 저녁까지 이어지는 후텁지근하고 뜨거운 날씨는 인도라면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우리가 간 11월은 인도에서 비교적 날씨가 덜 더운 시즌이고 여행하기 좋은 때라고 했지만 낮의 더위까지 피해 갈 수는 없었다. 하물며 선선한 계절이 그러할 진데 한여름의 인도 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그처럼 달궈진 땅 위를 맨발로 다니시면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시며 가장 어려운 이들의 고통을 몸소 감내하신 부처님의 실천은 당신을 더욱 존귀한 존재로 느껴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올라감으로써 올라가려고 하건만 당신은 낮아짐으로써 진정으로 올라가는 이치를 실천해 보인 것이다.

 

성경에서도 첫째가 되고자 하는 자는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된다’(마가 9-35) 라고 하는 구절이 보인다. 낮아져서 오른다는 이치는 여느 종교에서나 가르치는 진리라는 것이 확인되는 부분이다. 우리들의 마음은 올라가기는 쉬워도 내려가기는 참으로 쉽지 않기에, 하심(下心)은 바로 그 자체가 나를 비우는 수행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종조님께서 인욕바라밀을 하심이라고 번역하시고, ‘하심을 육행불공의 실천덕목으로 제시하신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승수지/항수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