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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의 시너지효과

밀교신문   
입력 : 20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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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끝자락 섬진강변 화개장터에서 하동 쌍계사에 이르는 십리벚꽃길에 벚꽃이 만발했다는 보도가 연일 이어지고 있고 구례 화엄사에는 이미 홍매화가 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굳이 남도까지 갈 까닭은 없습니다. 내가 사는 서울 답십리 작은 공원에도 매화꽃과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고 담장 양지쪽에는 보랏빛 제비꽃이 꽃망울을 터뜨립니다. 야산 곳곳에 박혀 있는 아까시나무들도 한껏 물이 올라 꽃을 피울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꽃은 사람들의 눈만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맘때부터 겨우내 보이지 않던 벌 나비들도 꽃을 즐겨 찾곤 합니다. 벌과 나비가 사람들처럼 꽃구경이나 하자고 몰려드는 것이 아니라 꽃봉오리에 숨어 있는 화분과 꿀을 따먹기 위해서 그러합니다. 그렇게 꽃들은 아낌없이 벌과 나비에게 꿀을 내어주지만 벌 나비만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꽃의 존재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으로 수정이 끝나면 열매와 씨를 맺게 되는데, 꽃의 화려한 색깔과 고운 향기 달콤한 꿀은 식물이 저 스스로 움직일 수 없기에 수정을 매개할 누군가를 유인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꽃은 꿀벌과 나비에게 꿀을 내줌으로써 수정에 성공하고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이렇게 꽃나무가 준 도움이 더 큰 도움으로 돌아오는 이치는 사람 사는 세상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베풀면 그 공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언젠가 한 보살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어서 대중공양을 하였더니, 더 좋은 일이 일어났어요.”

 

그 일이 너무나 신기한 듯 들떠 있는 보살님에게 웃으면서 맞장구쳐 주었습니다.

 

축하해요. 그런데 그건 절대로 신기하거나 신통한 일이 아니에요. 나눔으로써 더 커지는 것이 부처님 세상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랍니다.”

 

벚꽃길이 아름다운 섬진강, 화개마을에서 구례 화엄사로 가는 국도 중간쯤에 운조루(雲鳥樓)라는 멋진 고택이 하나 자리 잡고 있습니다. 1776년에 삼수부사와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柳爾胄)라는 분이 지은 집입니다. 운조루라는 이름은 인근 지리산으로부터 구름[]과 새[]가 자유롭게 흘러가는 집[]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이 지역은 해방 후 좌우 대결의 격전지였답니다. 지리산에 근거하고 있던 빨치산과 국군 간의 밀고 밀리던 현장이었던 것으로 자연 이곳에는 폭격이 끊이지 않았으며, 수많은 가옥들이 불에 타 사라지고 맙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운조루는 무탈했습니다. 까닭은 집주인의 보시정신에 있었습니다. 유이주의 후손들은 유이주의 더불어 사는 마음, 보시하는 마음을 늘 잊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 한 예로 나무로 만든 쌀뒤주를 개방해놓고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을 적어 놓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뒤주를 열고 쌀을 가져가도 된다는 뜻이었지요. 마을의 굶주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보시의 장치였던 셈입니다. 뒤주가 비는 즉시 또 쌀을 채워놓았고 당연히 마을 사람들은 늘 운조루에 고마운 마음을 결코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격전의 순간에서도 마치 내 집 지키듯 운조루를 지켜내어 지금까지도 늠름하게 자리하게 된 것입니다.

 

나무와 숲을 연구하는 차윤정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무가 열 장의 잎을 생산한다면, 열 장 중 두 장만 자신의 성장을 위해 쓰고, 나머지 두 장은 꽃과 열매를 위해 쓰며, 또 다른 두 장은 스스로에게 저장되는 몫이며, 나머지 두 장은 숲의 다른 생물들을 위해 쓴다.”

 

그 나머지 두 장의 의미가 바로 보시입니다. 애벌레가 그 두 장의 잎을 먹고 성충으로 자라며, 다 먹지 못한 잎은 땅으로 떨어져 땅속벌레와 미생물이 먹게 되며, 그 잎을 먹고 배설한 것들은 거름이 되어 다시 나무를 키우는 이 보시의 순환과 보시의 시너지 효과. 내주면 그 이상으로 크게 되어 돌아오는 것이 부처님 세상의 진리입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우리가 달고 있는 잎 몇 장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내주며 살고 있을까요? 탐진치에 찌들어 보시하는 마음을 잊고 지내지는 않는지, 보시가 시너지효과를 발휘하여 우리 사는 세상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진리를 멀리하고 있지나 않은지.

 

내가 남을 도와주고 베풀어주면 도로 돌아오니 내 것을 남에게 줄 줄을 알아야 한다.”(실행론)

 

꽃향기 머금은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회당대종사님 말씀이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봄날입니다.

 

이행정 전수/무애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