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하는 기도에 언제나 응답이 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그런 바람이 이루어졌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을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럴까?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떠내려가면서 자신의 구제를 간절히 바라던 한 사람이, 결국 그 기도에 응답이 없음을 원망하며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하여 저승에 도착한 그는 본인의 기도에 왜 응답을 주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신이 말하기를 “나는 너의 기도에 여러 번 응답을 해주었는데, 그 소중한 기회를 무시하고 스스로 날려버려 놓고 왜 나를 원망하느냐”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은 “도대체 언제 나를 여러 번 구하러 왔느냐?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여러 번의 응답을 해주었다고 왜 거짓말을 하느냐?”라고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때 신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 사람을 쳐다보며 “나는 너를 위해 처음에는 뗏목을 다음에는 보트를 마지막에는 구조헬기를 보내주며 너의 기도에 응답하였는데, 너는 왜 내가 직접 너를 구하러 갈 것이라는 생각에 묶여 너의 앞에 도착한 기도의 응답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느냐? 라고 안타까워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울부짖었다.
기도에 대한 응답을 미리 내 방식대로 정해놓고,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때때로 푸념하면서, 내 앞에 도착한 기도의 응답을 스스로 놓치고는 없는 줄 착각하고 살아가는 저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임을 이 이야기를 통해서 뼈저리게 알아차려 본다. 열심히 수행 정진하며 우리의 분별심과 고정관념을 깨뜨려 마음의 변화를 이루지 않고서는 불보살님이 바로 앞에 현현하시어 기도에 응답을 주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때 대중이 모여 관음보살님을 친견하여 해탈하고자 기도를 시작하였는데 마침 그 주변을 서성이는 거지가 있었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저 거지로 인해 기도처가 청정하지 않아 보살님을 친견할 수 없으면 어떡하나?’라고 걱정을 하다 기도를 마치는 날이 되었다. 친견을 기다리고 있는데 거지가 나타나자, 호통을 치며 끌어내려 하였고, 그 순간 거지는 보살님으로 변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면서 보살님은 “나를 친견하여 해탈을 얻고자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고통받는 중생을 자비심으로 구제하는 나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을 얻으려고 정진을 해야 하기에, 그 기회를 주고자 내가 거지로 변화한 것인데 그것도 알지 못하면서 나를 친견하려느냐”라고 일깨워 주었다고 한다.
우리는 늘 기도하고 그 기도에 응답이 있기를 바란다. <진각교전>의 “삼업정화(三業淨化)하는 곳에 삼밀행(三密行)이 있음이니 이를 정화(淨化)하려 하면 부처님의 가지력(加持力)과 관행자(觀行者)의 공덕력(功德力)과 저 법계(法界)의 통합력(統合力)에 의지(依支)하지 아니하면 정화(淨化)되지 않느니라.”라는 말씀과 위의 이야기들을 통해 알 수 있듯 부처님과 진리 법계는 기도하는 우리를 위해 잘할 수 있도록 알맞은 인연처를 만들어 주고, 응답이 있게 해 주려고 애쓰고 있기에 그 응답은 언제나 있다. 따라서 수행을 통해 우리는 마음의 변화인 공덕력을 울창하게 가꾸어 기도의 응답을 읽어내는 능력을 길러야 하겠다. 자연의 모든 생명이 성장하는 이 시기에 우리도 마음공부를 잘하여 내 앞에 도착한 기도의 응답을 놓치지 말자.
여원성 전수/보정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