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선선해지면 결혼 시즌이 왔다는 뜻이다. 주말 약속이 청첩장과 결혼식으로 빼곡해진다.
지금까지 두 번의 결혼식 축사를 맡았다. 세 번째 기회가 온다면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첫 번째 축사는 미혼이던 시절, 대학 친구를 위해 준비했다. 축복의 말을 가장 고운 단어에 담아 전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결혼을 경험하지 않은 채 건넨 말은 어쩔 수 없이 얕았다.
두 번째 축사는 결혼 1년 차, 중학교 친구의 결혼식에서였다. 이번에는 친구의 다정함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결혼생활의 선배로서 작은 비결을 곁들였다.
첫 무대는 발성 연습과 녹음을 수십 번 반복하며 완벽을 기하려 했지만, 두 번째는 사적인 추억에 머물지 않으면서도 위트와 여유를 담아낼 수 있었다.
그때 내가 강조한 건 ‘애교 필살기’였다. 대한민국 K-장녀라 무뚝뚝한 나와 달리, 막내인 남편은 애교가 많은 사람이다. 그 애교 덕분에 산불로 번질 싸움이 가벼운 불꽃 정도로 마무리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한 장면을 재현했다. 소녀에서 엄마가 된 애순이가 양손을 가슴 위에 포개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히이잉—” 하고 짧게 흘리는 소리. 그 한마디에 가족들이 꼼짝 못 하고 무너지는 장면이었다.
안 싸우기란 거의 불가능한 게 결혼생활이다. 그렇기에 관계에 불꽃이 튈 때 잘 끄는 법이 필요하다. 부부도 저마다의 ‘히이잉 필살기’를 갖추라고 했다. 작은 애교 하나가 싸움의 불씨를 꺼주고, 다툼 대신 웃음을 남길 수 있다는 것. 내 경험에서 우러난 가장 실속 있는 조언이었다.
두 번째 결혼기념일이 다가온다. 이제야 조금, 결혼이 무엇인지 감이 잡힌다. 그래서 첫 번째 축사처럼 무조건적인 희망과 낙관으로만 채우기엔 조심스러워졌다.
함께 산다는 건 기쁨과 성가심이 실타래처럼 얽히는 일이다.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다는 행복과, 방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치워야 하는 번거로움이 함께 있다.
평생 남이었던 사람과 한집에 산다는 건 희생과 배려, 책임과 노력을 요구한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무엇을 각오해야 하는지 실체는 없었다.
부부는 너무 가까이 있기에, 사소한 일상마저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곤히 잠든 상대의 얼굴을 보며 눈물이 날 만큼 벅찰 때도 있고, 퇴근 소식에 분주히 주방을 정리하면서도 ‘현관이 지저분한가?’ 하고 괜히 마음이 움츠러들 때도 있다. 시시각각 바뀌는 감정선. ‘사랑과 전쟁’이라는 제목, 참 절묘하다 싶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결혼하다 보면 내가 희미해지는 순간이 분명 온다. 오죽하면 “반쪽을 만나는 건 내 반쪽과 상대의 반쪽이 합쳐져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내 반쪽을 덜어내는 일”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겼겠는가.
그럴수록 외로움에 잠식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여야 한다. 결혼과 함께 새로운 역할이 주어진다고 해서 나 자신을 희미하게 만들면 안 된다. 오히려 더 스스로를 돌보고 아껴야, 그 에너지로 상대를 오래 사랑할 수 있다.
결혼은 사랑을 지키는 일에 앞서, 나를 지켜야 가능한 일이다. 결혼하는 예비부부여, 서로를 사랑하듯 자기 자신도 소중히 보듬어주길. 그것이야말로 내가 세 번째 축사에서 꼭 전하고 싶은, 가장 현실적이고도 따뜻한 축복이다.
양유진/글로벌 서비스 담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