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각장애인 악사에게 전해져 오는 전설을 그린 영화 <현 위의 인생>을 병오년 새해 아침에 생각한다. 1992년에 개봉한 첸 카이거 감독의 영화로 중국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영화 속 주인공인 노인은 눈먼 악사이다. 그는 거문고 줄을 천 개 끊을 정도로 평생을 다해 연주하다 보면 눈을 뜰 수 있을 거라는 스승의 말을 믿고 수행하듯 살아간다. 우리도 노인처럼‘성공하면’, ‘돈을 벌면’,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미래의 성공이란 늘 불투명 속에서 불확실하게 존재하고, 부단한 노력과 정진의 과정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세상에 그리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란 우리의 상상 너머에 있고, 수많은 좌절과 절망 속에서 탄생한다. 마침내 천 번째 현이 끊어지고 손에 든 처방전을 열었을 때, 그것은 아무 글자도 적히지 않은 백지 처방전이었다. 눈을 뜰 수 있다는 희망이 가짜였음을 깨닫는 순간, 노인이 눈을 뜨기 위해 앞만 보고 연주하는 동안, 정작 그의 곁에는 늘 제자 시두와 그를 사랑했던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처방전이 백지였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애초에 목적지(미래)에 도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으리라. 참된 인생이란 목적지에 도달해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천 개의 현을 끊어가는 그 지난한 과정과 기다림 속에 있음을 시사한다. 어쩌면 인생에서 구원이란 살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진실하고 절실한가를 되묻는 일이며, 결과 그 자체는 특별한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 일인지도 모른다. 노인이 연주할 때 그의 음악에 눈물 흘리고 위로받았던 사람들, 즉 지금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난 한 해는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의 아픈 소식이 섬까지 밀려와 마음을 졸이며 밤잠을 설칠 때가 많았다. 다시 건강도 체크하고 양가 부모님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육지서 살 때는 사람 그리운 줄 미처 몰랐다. 고마운 분들을 밤마다 하나, 둘 호명해 가슴에 새겼다. 요즘 들어 건강하란 인사가 절반이 넘는다. 언제 그런 나이가 되었는지.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라 했던가. 그러나 아직 중생인지라 죽음은 두렵고 안타까움에 더 가까이 있다. 부디 새해에는 우리도 저마다 차곡차곡 ‘천 일의 참회’를 준비하자. 하지만 그 참회의 목적이 먼 미래의 허상에만 있다면, 우리는 또다시 눈앞의 소중한 사람들을 놓치게 될 것이다. 영화 속 노인은 결국 다시 악기를 켠다. 이제는 눈을 뜨기 위해서가 아니라, 곁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연주하기 위해서이다. 올 2026년 병오년의 키워드가 변화, 전환, 성장, 도전, 진취성, 자율성이라면 당신의 참회는 누구를 향한 간절한 사무침인가? 항상 명심하라. 잊어도 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다 내 앞에 온 사람은 그만한 까닭이 있고 그래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평생을 바쳐 천 개의 줄을 끊어낸 백발의 노 악사가 마주한 것은 찬란한 시력이 아니라, 한 장의 빈 종이였다. 인생이라는 처방전은 원래 비어 있는 것이고, 그 빈칸을 채우는 것은 미래의 성취가 아니라, 지금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 바로 내 앞에 숨 쉬고 있는 사람들의 눈빛을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다. 새해에는 육안(肉眼)이 아닌 오롯이 감사와 지혜의 불심인(佛心印)인 마음의 눈을 뜨자.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다. 이문재 시인의 시 “지상의 아픈 마음들 다 받아내는/저 달은 그래서 둥글어지는 것인가/그래서 저토록 둥글고 밝은 것인가 <달의 백서1>/내가 새로워져서 지금 여기가 길고 넓고 깊어지는 것을 보고 싶었다 <침묵에서 가장 먼 곳까지>”을 새해 아침에 떠올린다. 지금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수진주 전수/식재심인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