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지막하게 하루를 시작한 어느 토요일, 괜스레 한껏 꾸미고 싶은 날이 있다. 평소엔 귀찮아서 잘 하지 않던 팔찌도 낑낑대며 차고, 목걸이에 귀걸이까지 나름의 ‘풀 세팅’을 마쳤다.
주로 달랑거리지 않는 딱 붙는 귀걸이를 선호하지만, 그날따라 왠지 우아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길게 늘어뜨린 귀걸이를 골랐다. 기분 좋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마땅히 있어야 할 한쪽 귀걸이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실착 횟수도 몇 번 안 되는 데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속상하고 아쉬운 마음이 밀려왔다. 금세 좋았던 저녁 식사의 여운도 풀이 죽어버렸다.
‘괜히 나갔나’, ‘데이트 내내 같이 있던 신랑이 알아차려 줬더라면’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 손을 이미 떠난 물건에 집착하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그 브랜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가격이 얼마였는지 찾아보고, 혹시나 누가 주웠을까 싶어 중고 거래 앱을 새로고침해 본다.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렸으면 주웠을 텐데, 어느 길가에 떨어져 누군가의 발에 밟히진 않았을까. 엄마와 백화점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르던 그 다정한 순간까지 떠오르니 상실감은 배가 됐다.
곰곰이 되짚어보니, 아뿔싸, 결정적인 장면이 스쳤다. 애초에 한쪽 귀걸이 뒷마개를 끼우지 않고 그냥 나갔던 것이다. 누구 탓을 하랴. 내 얼렁뚱땅한 부주의가 범인이었다. ‘어쩌면 좋아.’ 자책과 후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귀걸이 한쪽이 사라진 빈자리에 어느새 ‘집착’과 ‘번뇌’가 무겁게 매달려 있는 꼴이었다. 문득 헛웃음이 났다. 고작 귀걸이 한쪽 잃어버린 것뿐인데. 우리는 종종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은 당연히 영원히 내 곁에 머물 거라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헐거운 뒷마개 틈새처럼, 세상 모든 것은 언제든 틈만 나면 스르르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애초에 영원히 묶어둘 수 있는 것은 없다. 조건이 다해 떠나간 것을 억지로 붙잡고 괴로워하는 것만큼 미련한 일도 없다. 귀걸이 한쪽 잃었다고 오늘 보낸 행복한 시간과 남편과의 즐거웠던 식사 시간까지 통째로 잃어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마라’ 살면서 피할 수 없는 분실이나 실수가 첫 번째 화살이라면,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자책하며 오늘 하루를 망치는 것은 스스로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쏘는 일이다.
내 상황으로 치면 귀걸이를 분실한 것은 이미 벌어진 ‘첫 번째 화살(1차 피해)’이다. 그런데 그 아쉬움 때문에 저녁 내내 후회하고, 데이트의 여운을 깨고, 애꿎은 신랑을 원망하는 것은 내 손으로 나에게 ‘두 번째 화살(2차 피해)’을 마구 쏘아 대는 꼴이었다. 귀걸이값 얼마 손해 본 것도 아까운데, 내 소중한 주말과 마음의 평화까지 보태서 더 큰 손해를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과감하게 정신적 손절매를 감행하기로 했다.
"귀걸이는 잃었어도 내 오늘 하루는 절대 안 판다!" 하고 마음속 계산기를 두드리는 순간,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집착의 끈이 스르르 풀렸다. 살다 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들이 참 많다. 물건이든, 돈이든, 혹은 사람의 마음이든. 그럴 때마다 첫 번째 화살을 맞은 자리를 붙잡고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하며 두 번째 화살을 자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양유진/회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