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마니반메훔’ 염송으로 매일매일 참회하는 삶 살아가”
저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께서는 조계종 신도였다가, 종조님을 뵙고 심인당을 다니게 되셨습니다. 자연스레 어머니께서도 심인당에 다니셨고 신심이 두터우셨습니다. 그 당시 제가 어린 시절 새벽 5시면 정송을 시작하시며 저를 깨우셨고 저는 잠을 못 이겨 눈을 비비고 앉아 염송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대구 희락심인당에 다녔고,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취업했다가 다시 귀경하기까지, 희락심인당은 유년기와 청년기의 요람이었습니다. 5살쯤인가? 심인당 불사 시간에 염송하시는 할머니 앞에서 방석에 누웠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고 깨어나 보니 불사가 끝나 텅 빈 법당에 무릎 덮개를 덮고 있었습니다. 눈을 비비고 마당으로 내려가니 보살님들이 두런두런 법담을 나누시다가 웃으시며 맞아주시던 기억이 제게는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따뜻한 장면입니다.전 국민이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던 시절이라 밥 지을 때마다 식구 수대로 한 숟갈씩 절량미를 모았고 희사고에는 지폐보다는 동전이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2026-03-05